19일 오전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 여야 4당 대표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차담회를 위해 마련된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 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함께 테이블을 감나무 그늘 아래로 손수 옮기곤 ‘손님’을 기다렸다. 몇 분 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문 대통령이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이고 뭐고 처리가 돼야 하는데”라고 말을 건네자 추 대표는 웃으며 “저쪽(야당)은 ‘추’ 들어간 건 다 싫어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고추·배추·부추 3종을 다 못 드시고 있다고 한다”고 농을 건넸다.
상춘재서 4당 대표 맞은 문 대통령 #감나무 그늘로 테이블 직접 옮겨 #박주선 향해 “선거 전 일 모두 잊자”
뒤이어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례로 도착했다. 이날 청와대 회담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참하면서 여성 참석자가 남성 참석자 숫자보다 많은 ‘여초회담’이 됐다. 홍 대표는 한나라당 시절 통과시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 미국이 개정 협상을 요구한 걸 문제 삼았다. 홍 대표는 “이번에 회담을 하면 반드시 그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첫 대면에서 서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며 회담 제안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정부부터 더 열심히 소통하고 노력할 테니 야당도 협력할 것은 협력해 주시면 좋겠다”며 국회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는 추경과 정부조직법 개정안 이야기를 꺼냈다. 문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편 부분은 대체적으로 합의가 됐다고 들어 다행스럽다”며 “추경은 아직도 걸림돌이 남아 있나 본데, 어느 정도 타협되면 서로 100%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국회는 19일에도 추경안 처리에 난항을 거듭했다. 추경안에 담긴 공무원 증원예산 80억원을 삭감하는 대신 본예산의 목적예비비 500억원을 우회적으로 공무원 증원예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에는 여야 간 공감이 이뤄졌다. 그러나 야 3당은 “목적예비비를 쓸 경우 추경안 부대의견에 ‘공무원 증원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국회에 보고하고 예결위 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추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여당 대표가 막무가내로 대리사과를 당하기 전에 대통령도 여당 대표와 소통해 달라”고 요청했다. 임종석 실장의 ‘대리사과’에 대해 에둘러 항의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아들 준용씨에 대한 특혜 취업 의혹을 제기하면서 증거 조작 파문을 일으킨 국민의당 박 위원장에게는 “선거 전 일은 모두 잊자”는 말을 했다. “큰 강(대선)을 건넜으니 뗏목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을 하는 방향으로 협치를 하자”면서다. 오찬 후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진지하고 솔직한 말들을 비교적 소상하게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이혜훈 대표도 “(야당 대표들이) 건설적 제안을 하고 대통령이 경청하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