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강아지 엄마로 사는 일흔의 조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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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개들이 유난히 수난을 당하는 복날 즈음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조각가 강은엽 선생이다. 강 선생을 두 번 만났었다.

두 번 다 조각가로서가 아니라 ‘강아지 엄마’로서 인터뷰였다.

처음 만난 게 2008년이었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자락에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문밖에서 본 단독주택, 번듯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서자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열 마리 남짓의 개들이 마당부터 집안까지 활보하고 있었다.

개를 싫어하지 않지만,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신 사나워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들과 함께 사는 강 선생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런데 강 선생은 모두를 자식이라고 했다.

대부분 버려진 얘들을 데려와서 돌보는 것인데도 그리 말했다.

한술 더 떠 개와 함께 살기 위해 설계를 따로 하여 지은 집이라고 했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터뷰 후 동네 애들 밥과 물을 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주인의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동네 개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산속에 내쳐진 개들까지 챙겼다.

상상해 보시라.

물과 사료를 들고 산길을 걷는 일흔의 조각가 모습을 ….

강 선생이 ‘강아지 엄마’로 불리는 이유였다.

지난해 강 선생을 다시 만났다. 입구부터 ‘개판’(?)인 건 여전했다.

8년 만에 뵙는다며 강 선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 선생도 금세 기억해냈다.

“아! 누룽지와 함께 사진 찍어 주신 분이죠.”

2008년 신문에 함께 등장한 그 개의 이름이 누룽지였다.

난 그냥 개로 기억했을 뿐인데 그에겐 이름이 있는 자식이었다.

“2009년에 누룽지가 하늘로 갔어요. 골수암이었어요.

방에 유골단지를 모셔두었죠. 내가 죽으면 같이 묻어달라고 해놓았어요.”

짠했다.

사실 누룽지는 동물병원 문 앞에 피투성이로 버려진 유기견이었다.

피투성이를 거두어 키웠더니 금세 체중이 40㎏이 될 만큼 자랐다고 했다.

당시 살던 아파트에서 돌보기 힘들 정도로 자란 게다.

그래서 누룽지와 함께 살기 위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은 것이었다.

강 선생이 유기견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도,

나아가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누룽지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강 선생은 “사람이 저질러 놓은 일, 사람이 거두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곁에 품고 마음에 묻고 살아온 게 자그마치 20년이니 진정한 반려였다.

강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중, 한 애가 유독 내게 이빨을 드러냈다.

이따금 다가와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무서웠다.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어 보았다. 강 선생이 목을 쓰다듬어 주라고 했다.

그렇게 했다. 그때부터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카메라만 들면 사진을 못 찍게끔 몸을 비비며 응석을 부렸다.

그 애에게 필요한 건 관심이었음을 알았다.

그때 강 선생이 말했다.

“자식 키우는 것과 다름없어요. 개들도 감사함을 알아요. 핥고 비비며 그렇게

표현하죠. 남을 도와주면 당신이 행복해지듯 그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집니다.”

그 애의 이름이 ‘씩씩이’라 했다.

사진을 찍는데 그 애가 강 선생 등에 올라 탔다.

그 표정, 웃는 듯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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