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숭의초 학교폭력 은폐, 수사 당국이 철저히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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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학교는 가장 정의롭고 공정하며 깨끗해야 할 배움의 터다. 교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지혜, 품성을 가르치는 큰 스승이 돼야 한다. 큰 나무 아래서는 어린 나무가 자랄 수 없지만 큰 스승 밑에서는 아이들이 크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 숭의초등학교 스승들은 이런 가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서울시교육청 감사에 따르면 재벌 회장 손자와 연예인 아들이 연루된 학교폭력 사건을 은폐·축소하고도 사과는커녕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교육청의 감사 결과 숭의초는 교장·교감·담임·생활지도부장이 한통속이 돼 학교폭력 사실을 숨긴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직후 피해 학생 어머니가 아들을 플라스틱 야구방망이로 때린 가해자 중 한 명을 재벌 회장 손자라고 지목했지만 학교 측은 학교폭력자치위 심의 대상에서 누락시켰다. 그 학생이 또 다른 학생 2명을 때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냥 넘겼다. 지난 4월 학교 수련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더 어이없는 일은 학교 측이 목격자 9명에게 받은 진술서 18장 중 6장을 분실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재벌 회장 손자를 보호하려고 결정적인 증거를 없앤 게 아니냐는 게 교육청 판단이다. 숭의초는 감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해당 학생은 폭행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목격자도 있으니 증거를 대라는 것이다. 피해 학생 측이 그 학생을 5월 30일에야 지목하는 바람에 이틀 뒤 열린 심의 대상에서 뺐을 뿐이며, 분실한 진술서 6장도 공식 조사 문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잘못이 없다며 버티기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 당국이 진실을 밝히는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당장 수사를 의뢰하기 바란다. 모든 경위와 진실을 밝혀야 찢기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스승들이 제 몸 건사하려고 짬짜미했다면 교단에서 영구히 추방해야 한다. 학교폭력까지 유전무죄에 휘둘려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