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피해자 장남 사망…부친 산소 인근 사고 추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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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중앙포토]

갈대밭(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중앙포토]

3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고(故) 최을호씨의 장남이 숨진 채 발견됐다. 무죄 판결을 받은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산소를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 34년 만에 무죄 판결에 부친 위로차 형제들과 산소 찾아 #새만금간척지 갈대밭에서 길 잃고 쓰러져 숨진 것으로 추정

12일 전북지방경찰청과 김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3시쯤 김제시 진봉면 고사마을 인근 새만금간척지 갈대밭에서 최모(61·지적장애 3급)씨가 숨져있는 것을 경찰 헬기가 발견했다.

최씨는 이틀 전 실종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색 중인 상황이었다. 발견 당시 얼굴을 갈대밭 바닥 쪽으로 한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특별한 외상이나 타살 혐의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는 지난 9일 낮 12시쯤 형제들과 고사마을 뒷산을 찾았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가 34년 만에 누명을 벗자 이를 알리는 제를 올리기 위해서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부친의 산소에서 “담배를 사러 다녀오겠다”며 홀로 산을 내려왔다. 이후 최씨 홀로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주변 폐쇄회로(CC)TV에 담겼다.

전북지방경찰청. [중앙포토]

전북지방경찰청. [중앙포토]

경찰은 최씨가 길을 잘못들어 갈대밭에 들어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최씨는 형제들과 무죄 판결문을 들고 아버지의 산소에 가기 위해 잠시 퇴원한 상태였다.아버지가 숨진 이후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

경찰 관계자는 “지적 장애에 당뇨 등 지병이 있는 최씨가 길을 헤매다가 체력이 바닥나 쓰러진 뒤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족들이 사망 경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 부검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82년 6월 농부 최을호씨가 북한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뒤 북한의 지령을 받고 조카들을 간첩으로 포섭해 국가기밀을 수집하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쓴 사건이다. 최을호씨는 고문 끝에 재판에 넘겨져 이듬해 3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을호씨에 대한 사형 집행은 1985년 10월 이뤄졌다. 조카 최낙교씨는 검찰 조사 도중인 82년 12월 구치소에서 숨졌다. 또 다른 조카 최낙전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9년을 복역 후 석방됐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부장 김태업)는 지난달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당한 최을호씨와 징역 9년을 복역한 최낙전씨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헌법이 보장하는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범법자로 낙인찍혔다”며 “국가가 범한 과오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김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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