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역대급 만남’은 어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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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드라마에서 맺은 인연이 현실이 됐다. 송혜교와 송중기 얘기다.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연일 화제가 됐던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국내외 언론은 “역대급 스타 부부 탄생”이라며 기사를 쏟아냈다. “역대급 만남부터 결혼까지 뒷이야기”를 담은 후속 기사도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인지 ‘역대급’이란 말이 유독 기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열애설 인정 없이 바로 결혼 소식을 전하다니 역대급 깜짝 결혼 발표네요”와 같이 댓글에서도 ‘역대급’이란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 많이 쓰는 ‘역대급’은 조어법에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말이다.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대(代)란 뜻의 ‘역대’와 접사 ‘-급(級)’이 합쳐진 것으로 의미 연결이 잘 안 된다. ‘-급’은 재벌급·전문가급·사장급처럼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에 준하는’이란 뜻을 더한다. 높고 낮음이나 좋고 나쁨, 잘하고 못함 따위의 차이를 여러 층으로 구분할 수 없는 ‘역대’ 같은 명사에 붙는 건 어색하다. ‘역대급’ 대신 ‘역대 최고의’ ‘역대 최고급’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역대급 흥행”은 “역대 최고급 흥행” “역대 최고의 흥행”, “역대급 찬사”는 “역대 최대급 찬사” “역대 최대의 찬사” 등으로 바꿔 주는 게 바람직하다.

많이 쓰이다 보니 국립국어원이 변화하는 언어 현실을 빠르게 반영하고자 만든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에 ‘역대급’이 올라 있긴 하다.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대 가운데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는 등급’으로 풀이돼 있으나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은 건 아니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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