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엔 사무총장감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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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유엔)이 큰 별을 잃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유엔본부 폭탄테러로 숨진 세르주 비에이라 데 멜루(55.사진) 유엔특사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 등 세계 유력 언론은 이렇게 헌사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 기구 내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뛰어난 리더십과 헌신적인 활동으로 국제무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 아난 총장이 "내 뒤를 이을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치색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실무형 외교관인 그가 이라크 특사로 임명될 때 유엔 회원국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나라가 없었을 정도로 공평무사한 업무처리는 높은 신임을 받았다.

이라크 공격에 대해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난에 직면한 미국으로선 그를 통해 '미국과 유엔이 이라크 재건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유엔뿐 아니라 미국으로서도 크나큰 손실이다.

미국은 유엔본부 테러의 주 표적이 데 멜루 특사였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폭탄 차량이 바로 데 멜루 특사의 사무실이 있는 쪽으로 돌진한 점으로 볼 때 테러조직은 바로 그를 노렸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레바논 유력 일간지 알 무스타크발도 데 멜루 특사가 지난 8일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탄 비행기가 지난 5일 바그다드 공항에 착륙했을 때 총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고 20일 보도했다.

브라질 출신인 데 멜루 특사는 코소보.동티모르 분쟁을 중재하는 등 34년간 유엔에 근무하면서 분쟁지역의 평화정착과 인도적 지원에 인생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전문 외교관이었다.

1969년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직원으로 유엔에 들어온 그는 방글라데시.키프로스.모잠비크.레바논 등 분쟁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98년 유엔 인도지원차장을 지낸 뒤 99년 7월 코소보 유엔특사를 맡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군 철수를 이끌어내는 데 참여했고, 알바니아 난민 수십만명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어 동티모르 유엔 과도행정기구를 이끌며 동티모르의 독립과 국가건설을 후원하기도 했다.

데 멜루는 지난해 9월 유엔 인권기구의 총책인 인권고등판무관이 됐지만 자신의 직책을 부하에게 맡기고 5월부터 8월까지 기한으로 이라크 임시특사 임무를 받아들였다가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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