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정인 특보의 아슬아슬한 한·미 동맹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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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지난 16일 밝힌 북핵 해법 구상은 여러모로 우려를 낳는다. 문 특보는 이날 워싱턴 DC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이라며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 “이 문제로 한·미 동맹이 깨진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고도 했다고 한다.

이들 발언은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힌 상황에서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한반도에 배치한 전략자산과 합동 군사훈련은 굳건한 한·미 동맹의 상징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들을 이처럼 쉽게 내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지키는 척하면서 몰래 핵무기를 개발했던 전력이 있다. 이런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안 하겠다고 해서 미 전략자산과 합동 군사훈련을 줄이는 게 합당한가. 이후 김정은 정권이 돌연 실험을 재개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매사 없애기는 쉬워도 재개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엄청난 돈이 드는 전략자산 배치와 합동 군사훈련을 복원시키는 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12일 앞둔 시점에서 이처럼 민감한 발언이 튀어나온 것도 유감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 정치인에 대한 홀대 논란에다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오토 웜비어 사건으로 김정은 정권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 정계의 감정도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런 예민한 상황에서는 한·미 공조에 틈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언행은 삼가는 게 백번 옳다. 그의 발언 이후 미 국무부가 “문 특보의 견해는 개인 입장으로 본다”고 밝힌 것도 불편한 심경의 반영이 틀림없다.

문 특보는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해 앞으로는 바위처럼 진중히 처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