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화재, 예고된 인재였나…"화재 경보 안 울렸다"

중앙일보

입력

 14일(현지시간) 새벽 1시께 영국 런던의 24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가 5시간이 지나도록 진화되지 못한 가운데 대규모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4층 아파트서 5시간 넘게 불길 지속돼 건물 거의 전소 #74년 건설돼 지난해 리모델링한 임대 아파트…저소득층 많이 살아 #생존자 "화재 경보 안 울렸다. 소방차 세울 공간도 부족" #"건물에 남은 사람 많다" 증언…인명 피해 예상 #복도에 연기 자욱해 탈출 사실상 불가능해

이 아파트에 거주하던 120가구 수백 명의 주민 상당 수가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돼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시 당국에 따르면 현재 30명의 부상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인 피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은 런던 서부 래티머 로드에 있는 아파트 '그렌펠 타워'의 2층에서 난 불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고 보도했다. 소방차 40대와 소방관 200명이 출동해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아침까지 잡히지 않았다. 5시간 뒤인 오전 6시께엔 건물이 거의 전소한 가운데 일부 층에서 여전히 화재가 계속됐다. 피해 규모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건물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건물 안에 남아 있던 거주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구조를 요청했다. 침대보로 줄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건물 인근엔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잠옷 차림에 맨발로 달려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방관 가운데 선발대로 현장에 도착한 조디 마틴은 가디언에 "건물 주변을 둘러봤지만 비상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위에서 건물 잔해들이 마구 떨어졌다"며 "겨우 2층으로 올라가보니 복도에 연기가 자욱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건물을 빠져나오기는 어려워 보였다"고 밝혔다.

마틴은 이어 "창밖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봤다. 아기를 창문 바깥으로 내밀고 있는 여성도 있었다"며 "비명소리가 들려서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질렀지만 '복도에 연기가 가득해서 나갈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건물 상층부에 살았다는 한 생존자는 가디언에 "불이 났을 때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옆집 사람들이 소리지르는 걸 듣고 알았다"며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지만 건물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 생존자는 또 "건물 주변에 소방차를 주차할 공간이 충분치 않다"며 이 사건을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건물 3층에 거주했던 한 생존자의 형제인 인근 주민 시어 나크샤반디는 "아무런 화재 경보도 없었다고 들었다"며 "내가 건물 밖에서 불이 난 걸 보고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한 그렌펠 타워는 시 정부가 소유한 임대아파트다. 1974년 지어진 건물로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쳤다. 아랍계 등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며 고층엔 저소득층이 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재를 목격한 주민 조지 클라크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가슴이 아프다. 건물 꼭대기에서 불빛을 흔들며 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봤는데 분명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이번 화재를 "중대한 사건"이라고 선포하며 시 차원에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서울=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