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심리다. 문재인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책 예고에도 부동산, 특히 아파트값이 꿈틀대고 있다. 정부가 ‘투기과열지구 지정’이라는 고강도 규제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이번 주에도 0.45% 오르며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KB국민은행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분석 #전국 아파트값, 노태우 정부 때 70% 급등 #서울 강남ㆍ북 격차는 김대중ㆍ노무현 때 #이명박 부산, 박근혜 땐 대구가 상승률 1위 #‘노무현 정부 시즌2’ 기대감에 강남 꿈틀 #투기지역 지정하는 심의위 재가동 여부 주목
현재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건 앞으로 나올 규제책이 아니라 과거에 급등했던 경험이다. 서울, 특히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3구’의 아파트값은 노무현 정부 시절 80% 안팎으로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이념을 상당 부분 계승하는 만큼 강남 아파트값도 오를 거라는 게 (논리적 정합성 여부와는 관계없는)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다.
10일 본지가 KB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월간 주택가격 동향 조사 내역을 토대로 역대 정부의 정권 초기와 말기의 아파트값을 분석했다. 조사에 쓰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15년 12월 거래가격을 100으로 보고 같은 지역의 아파트 거래가격을 지수화했다. 지역별 가격 차이는 알 수 없으나 같은 지역의 아파트값이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는 알 수 있는 수치다. 지수는 1986년 1월부터 조회 가능하며, 서울 자치구별 자료는 2002년 12월부터 알 수 있다.
전국적으로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때는 노태우 정부 시절이다. 1988년 2월 24.5이던 지수는 임기 말인 1993년 2월 41.7로 70% 급등했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김영삼 정부 시절엔 전국 아파트값이 3.2% 오르는 데 그쳤다. 김대중(38.5%)ㆍ노무현(33.8%)ㆍ이명박(15.9%)ㆍ박근혜(9.8%, 탄핵된 2017년 3월까지 계산) 등 모든 정부에 걸쳐 아파트값은 ‘불패’ 신화를 남기며 상승세를 이어왔다.
서울만 뜯어보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역시 노태우 정부 시절 서울 아파트값은 70.7% 급등했고, 김영삼 정부 땐 2% 상승에 그쳤다. 그런데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각각 59.8%, 56.6%로 전국 평균을 훌쩍 웃돌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오히려 3.2% 하락하며 뒷걸음질쳤다. 박근혜 정부 땐 10.1% 상승했다.
특히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서울 강남과 강북의 격차가 벌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 강북 아파트값이 31% 오를 때 강남은 77.9% 급등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강북이 41.4% 상승할 때 강남은 67% 뛰었다. 이전 노태우ㆍ김영삼 정부 땐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값 상승률 차이가 2~4%포인트로 미미했다. 이명박 정부 땐 강북이 0.6% 오른 반면, 강남은 6.5% 하락했다.
서울 자치구별 데이터가 나온 노무현 정부 시절 이후를 비교하면 구별 차이가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송파구(82.8%)ㆍ강남구(79.9%)ㆍ서초구(79.4%) 등 강남3구다. 최근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지역이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이 지역의 아파트값 낙폭이 컸다. 송파구는 12.7% 급락했고, 강남구(-10.1%)와 서초구(-6.7%) 등도 하락을 주도했다. 반면 이전 정권에서 상대적으로 못 올랐던 중랑구(9.7%)와 종로구(5.4%) 등이 그나마 선전했다.
이명박 정부 때 서울이 고전했지만 부산 지역 아파트값은 55.2% 급등했다. 특히 부산 사상구는 71.7% 뛰며 아파트값 상승률 1위를 차지했다. 박근혜 정부 때에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만큼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랄 수 있는 대구가 33.6% 올랐고, 특히 대구 수성구는 34.6% 급등하며 전국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때 아파트값은 ‘노무현 정부 시즌2’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팽배하다. 이런 기대감을 꺾기 위한 시그널을 정부는 순차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지난 7일 인사청문회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급등과 관련해 다음주부터 관계 부처들이 현장 점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 높은 규제책을 예고하는 언급이다.
2012년 5월 이후 중단됐던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가 다시 가동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심의위는 부동산시장을 모니터링하고 부동산 투기지역 지정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기획재정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두고 국토교통부 차관, 한국조세연구원장, 한국감정원장 등 정부위원 6명,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등 민간위원 6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2003년 심의위가 탄생한 이후 2008년 1월까지는 통상 1∼2개월 간격으로 모두 55차례 회의가 열렸다. 그 다음 회의는 4년여가 지난 2012년 5월 열렸고, 서울 강남 3구에 대한 주택투기지역 해제를 의결했다. 그리고 이후에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정부는 그간 투기지역 지정이나 해제와 관련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심의위를 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시장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점검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건축ㆍ재개발 시장 호황,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 저금리 장기화 등과 맞물려 지난달부터 수도권 집값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 터라 심의위가 다시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