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유감표명 싸고 남-남 갈등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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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지만 남한 내 이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8.15 국민대회에서 보수단체가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를 불태운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자 보수 진영은 일제히 "대통령이 북한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반발했다.

8.15 국민대회 집행위원장인 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은 "체육행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북한의 장난에 대통령이 놀아난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상징물인 인공기를 태운 게 뭐가 문제인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조중근 사무처장은 "그동안 정부가 진보단체의 과격행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에 보수단체들이 과격해진 측면도 있다"며 "북한의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를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끌려다녀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철승 자유민족회의 의장은 "북한은 6.25 남침 이후 최근 서해 무력도발까지 테러와 양민 납치를 수도 없이 저질렀는데도 아무런 사죄가 없는데, 인공기 소각에 사죄를 요구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며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盧대통령이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고 먹칠했다"(밝고힘찬나라운동 박근 집행위원장)는 원색적인 비난도 나왔다.

인터넷에서도 "지나친 대북 저자세"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인스닷컴에서 박정기씨는 "대통령이 민심을 왜 이리 모르나. 제발 북한에 끌려다니지 말자"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감 표명의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경우도 있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남북관계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감 표명을 한 것은 성급한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盧대통령의 발언이 "민족 화해의 대승적 자세"라며 옹호하는 주장도 많았다. 네티즌 한상보씨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이 참가하면 결과적으로 우리 이익인데, 고뇌에 찬 대통령의 결정에 박수는 치지 못할망정 욕을 해선 안된다"고 반박했다.

통일연대 박준형 대외협력국장은 "북측이 유니버시아드 대회 참가를 망설였던 것은 수구세력의 극단적인 대북 적대행위와 민족분열 책동 때문"이라며 "정부는 북측의 신변 위협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도 "유니버시아드가 반쪽 대회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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