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율 낮은데 경찰력 늘리자…잡범 쫓는 일본 경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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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 파출소에 해당하는 '고방(交番)'의 모습. [사진 지지통신]

일본 경찰 파출소에 해당하는 '고방(交番)'의 모습. [사진 지지통신]

범죄율은 해마다 낮아지는 데도 경찰 수를 계속 늘려온 일본에서 희한한 사건이 부쩍 늘고 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할 일이 줄어든 일본의 경찰관들이 거리에서 범죄사냥에 나서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가고시마(鹿兒島)에선 경찰 5명이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훔친 도둑을 잡기 위해 1주일 간 잠복근무한 끝에 붙잡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피의자인 중년 남성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정하면서 사건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자전거 도난사건을 해결하거나 미량의 마약이라도 소지 여부를 수색하는 것은 일본 경찰의 주요 임무라고 잡지는 전했다.

맥주 도둑 잡으려 경찰 5명 1주일 잠복 #살인율 가장 낮아…인구 10만명당 0.3% #야쿠자도 고령화, 세력 약화되는 실정 #경찰은 10년 새 1만5000명 늘어나 #감시사회 우려 목소리…'공모죄'도 걱정

일본의 범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0.3% 수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2015년 한해 동안 보고된 총기살인 사건은 단 1건에 그쳤다.
총기사건이 많은 미국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거의 4%에 이른다.
심지어 일본사회의 골칫거리인 야쿠자 조직원들조차 점점 늙어가는 추세여서 세력이 약화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경찰력은 거꾸로 점점 커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일본의 제복 경찰은 현재 25만9000명 정도다.
역대 범죄율이 가장 높았던 10년 전에 비해 1만5000명이나 늘었다.
특히 경찰력이 집중된 도쿄(東京)의 경우 미국 뉴욕과 비교해 25% 정도 더 많은 경찰이 활동 중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경찰이 개입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야마 가나코(高山佳奈子) 교토대 법학 교수는 “자전거에 붉은 라이트를 켠 채 달렸다고 기소한 일도 있다”면서 “업무가 사라진 경찰들이 창의적으로 범죄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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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른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이 '문제 학생'을 감시한다는 핑계로 허락 없이 대학 캠퍼스를 출입하는 등 점차 감시사회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에는 한 남성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얼굴에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을 합성한 포스터를 내걸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일본 야권과 시민사회가 아베 정권이 발의한 테러방지 법안, 이른바 ‘공모(共謀)죄’ 법안의 남용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경찰이 테러 모의를 이유로 일반인을 수사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모죄 법안은 지난 23일 중의원을 통과해 참의원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인권 변호사인 야스다 요시히로(安田好弘)는 “범죄율이 줄어드는 데도 (일본 시민사회는) 이 같은 우려 때문에 경찰에 감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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