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자동차 길, 사람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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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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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line Park)’는 2.4㎞ 길이의 고가 철로에 세워진 힐링 공원이다. 1934년 화물 운송용으로 개통한 철로는 80년 운행이 중단되자 잡초와 쓰레기로 뒤덮여 흉물이 됐다. 지주들이 “부동산값이 떨어진다”며 철거를 주장하자 시민들은 “역사의 숨결”이라며 보존을 요구했다. 뉴욕시는 시민 손을 들어줬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지상 9m 높이의 폐(廢)선로에 나무와 꽃을 심고 정원과 쉼터를 조성해 2009년 개방했다. ‘느릿느릿’이 상징인 보행로에는 앉을 곳, 누울 곳, 감상할 곳이 많아 연간 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2014년 9월 23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하이라인 파크를 둘러보다 새로운 결심을 굳혔다. 서울역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도심 속 녹지 공간으로 재생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2015년 12월 13일, 45년간 자동차 길이었던 서울역 고가는 인간의 길로 거듭나기 위해 폐쇄됐다. 그리고 1년6개월 만인 지난 20일 퇴계로와 만리동을 잇는 국내 첫 공중 보행로로 다시 태어났다.

이름은 ‘서울로 7017’. 언뜻 이해가 안 되고 친근하지도 않다. 7017의 ‘70’은 서울역 고가도로가 개통된 1970년의 70, ‘17’은 2017년에 17개의 보행길로 연결한다는 의미란다. 총 길이는 지상 214m, 고가 810m를 합쳐 1024m인데 597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서울시는 "보행로의 둥그런 화분 645개에 228종 2만4085주의 꽃과 나무를 심어 공중정원처럼 꾸몄다”고 했다.

주말에 걸어보니 절반의 성공이었다. 시민들이 몰려 혼잡했지만 17m 높이에서 서울역과 15차로 도로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색달랐다. 족욕시설과 분수대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10.3m 너비의 보행로 곳곳에 화분이 놓여 있어 불편했고, 고가에 설치된 유리는 아파트 베란다 같았다. 그늘이 없고 쉴 곳도 적어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야경은 반전이었다. 은은하면서도 짙푸른 조명이 보행로를 물들여 딴 세상을 걷는 느낌이었다. 한 시민이 말했다. “여름엔 밤에만 오면 되겠구먼.”

서울역 고가는 이제 ‘사람의 길’이 됐다. 하이라인 파크처럼 사랑을 받으려면 갈 길이 멀다. 주변 영세업자들을 울리는 젠트리피케이션, 교통 혼잡과 매연, 안전 문제, 그늘막 확충 등 해결할 문제가 많다. 서울시의 일방적인 행정으론 문제를 풀기 어렵다.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도심 재생의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람의 길이 되지 않을까.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