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손가락 절단사고 후 목숨 끊은 노동자, 업무상 재해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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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뒤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1일 A씨의 유족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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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09년 2월 전자부품 제조업체에서 필름 커팅 작업을 하다가 사고로 손가락 6개가 절단됐다. 2010년 9월까지 120일간 입원해 3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A씨는 통증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는 등 조울증을 앓기도 했다. 그 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2014년 3월 거주 중이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유족은 업무상 재해로 입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에 이르게 됐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업무와 인과관계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1, 2심 재판부도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손가락 절단 사고와 정신질환의 관련성이 높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씨가 앓던 질환은 사고 발생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로 악화돼 발병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자살을 선택할 다른 특별한 사유가 없는 사정을 고려하면 정신질환으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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