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영업자 소득신고 개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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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보험료는 올리면서 급여혜택은 줄이고자 하는 정부의 개혁안에 대해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한번 허용된 복지혜택을 줄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개혁안의 통과가 불투명해 보여 매우 안타깝다.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노후보장을 책임지는 복지제도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 전 국민 연금을 조기 달성할 수 있게 저보험료.고급여라는, 부담보다 혜택이 더 큰 현재의 틀을 만들었다. 이러한 틀은 연금재정을 조기에 고갈시켜 후손들에게 높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문제가 있다.

인구성장률만 계속 높게 유지된다면 비용을 부담할 후세대 인구가 많아지기 때문에 현재의 틀을 유지할 수도 있다. 출산율이 1.17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우리로서는 후세대 인구가 적어지기 때문에 후세대에 빚을 넘기지 않기 위해 개혁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국민연금에서 보다 근본적 문제가 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과 관련해 개혁내용이 미진하여 실망스럽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국민연대를 명분으로 건강보험도, 국민연금도 근로자와 단일재정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저소득자일수록 급여율을 높여 소득재분배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어 자영업자 소득의 축소신고는 건강보험에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자영업자들이 실소득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을 축소 신고하면 봉급생활자에 비해 급여율이 높아져 형평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자영업자의 높은 급여율은 연금재정의 조기 고갈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연금수령액은 가입자 전체의 평균소득에 영향을 받는데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축소 신고하면 평균소득액이 낮아져 봉급생활자들의 연금수령액이 낮아지는 문제도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서 단일 관리는 여러가지로 봉급생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자영업자들의 소득 축소신고로 일어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연금공단은 '신고기준소득'을 도입할 예정이다. 신고기준소득이란 자영업자의 업종과 영업지역에 따라 평균소득을 산출하고 여기에 보유재산과 자동차를 감안해 추정하는 소득이다.

신고기준소득에 의거해 자영업자의 소득을 조정하게 되면 보험료가 인상되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이 제도에 대해 크게 반발할 것이기 때문에 1999년 4월의 연금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신고기준소득의 사용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소득 확정은 국세청 업무인데 국세청에서 확정한 소득을 제쳐놓고 연금공단이 자영업자에 대해 별도의 소득개념으로 세금과 같은 성격인 보험료를 부과하면 국가기관의 공신력에 흠집을 만드는 문제가 있다.

둘째, 보험료를 걷을 연금공단이 보험료를 낼 사람의 소득을 추정하게 되면 보험료를 많이 걷기 위해 추정이 자의적이 될 수 있어 자영업자들이 수긍하지 않고 제도에 반발하게 되는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과거 국세청에서 자영업자들에 대해 인정과세 방식으로 세금을 부과하다 자영업자들의 반발 때문에 95년 이후에는 폐지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인정과세의 자의성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방식을 국민연금에서 사용코자 하니 자영업자의 반발은 당연히 예상된다.

선진국들도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자영업자 소득의 정확성에 문제를 간직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전 국민을 단일제도로 관리하는 경우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거나 기초연금제도 또는 완전적립방식의 제도를 사용한다.

그리하여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를 단일 관리해도 추정소득과 같은 자의적인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제도의 진정한 개혁은 바로 자영업자들의 소득신고가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틀의 제도를 만들 때 이뤄질 것이다. 이 문제는 건강보험에서도 동일하다.

李奎植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