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사죄비→위령비 교체 장본인 日 설립자의 장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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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3년 12월 15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세워진 강제징용 사죄비 표지석 원본.[사진 망향의 동산]

지난 1983년 12월 15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 세워진 강제징용 사죄비 표지석 원본.[사진 망향의 동산]

일본 위안부 강제연행을 사죄하기 위해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가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세운 '일제 강제징용 사죄비'를 위령비로 교체한 장본인이 다름아닌 요시다의 장남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12일 산케이 신문은 사죄비를 교체한 것은 요시다의 장남으로, 그는 부친의 위안부 강제연행 발언이 거짓이기 때문에 사죄비를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요시다 세이지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주로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임무를 맡았던 인물로 "전쟁 중 한반도에서 위안부로 삼기 위해 제주도에서 많은 여성을 무리하게 연행했다"고 주장해 일본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아사히 신문은 관련 내용을 1980~1990년대 약 16회에 걸쳐 보도했지만 2014년 8월 요시다의 발언 내용의 근거가 없다며 32년 만에 관련 기사를 공식 삭제했다.

요시사다 천안에 사죄비를 세운 것은 앞선 1983년이다. 요시다는 자신의 행동을 참회한다는 내용의 자서전 '나의 전쟁범죄 조선인 강제연행'을 저술해 그 인세로 망향의 동산에 사죄비를 세웠다.

당시 그는 제막식에 참석해 비석의 내용을 직접 낭독했다.

사죄비에는 "'귀하들께서는 일본의 침략 전쟁 시 징용과 강제연행으로 강제노동의 굴욕과 고난에 가족과 고향 땅을 그리워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나는 징용과 강제연행을 실행 지휘한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비인도적 그 행위와 정신을 깊이 반성하여 이곳에 사죄하는 바입니다. 늙은 이 몸이 숨진 다음도 귀하들의 영혼 앞에서 두 손 모아 용서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요시다의 장남은 부친의 증언이 위증이라며 사죄비를 위령비로 교체했다. 그는 지난 3월 일본 자위대의 전 자위관에게 의뢰해 사죄비 철거를 시도했으나 철거가 어렵자 사죄비 위에 다른 비석을 덧대는 방식으로 위령비를 교체했다.

위령비에는 한국어로 '위령비 요시다 유토 일본 후쿠오카'라고 쓰여있다. 요시다 유토는 요시다 세이지의 본명으로 알려졌다.

산케이 신문은 요시다의 장남이 "아버지의 위증으로 한일 양국 국민이 불필요한 대립을 하게됐다"며 "아버지가 사비를 들여서 세운 비라면, 유족의 권한으로 철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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