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반도 유사시 4단계 대피...가장 위험할 땐 선박 검토

중앙일보

입력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을 4단계에 걸쳐 대피시키는 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한국 내 일본인은 업무에 따른 장기 체류자 3만8000명과 관광 목적의 단기 체류자 1만9000명 등 약 5만7000명이다.

한국 내 일본인 5만7000명 단계적 대피 방안 마련 #미ㆍ일이 역할 분담해 양국민 피난 대책도 강구 #자위대 함정 등 이용 땐 한국 정부 동의 필요 #일본 정부 관계자, “현재 위기단계 올릴 계획 없어” #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대피 방안의 1단계는 일본인에게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북한이 한국에서 테러 등을 한다는 내용을 일본 정부가 사전에 파악하면 외무성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급하지 않은 방문 등은 자제하라는 정보를 발신하게 된다. 단기 체류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다.

2단계는 1단계보다 일본인에게 미칠 위험이 큰 상황으로 남북 간 총격전 등을 상정하고 있다. 외무성은 이 단계에선 방문을 중단해 달라고 권고하게 된다. 동시에 한국 체류 일본인 가운데 고령자와 여성, 아동 등에 조기 귀국을 요청한다.

3단계는 위험이 임박한 경우로 한국 체류 일본인의 대피와 자국민의 방한 중단을 권고한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한적 폭격 등이 있으면 즉각 대피 권고를 내릴 계획이다. 이 단계에선 한국 내 공항에 일본대사관 직원을 파견해 민간기를 이용한 출국을 지원한다. 민간기 이용이 불가능할 경우 정부가 전세기를 띄우는 방안도 검토한다. 일본 정부는 현재 미국의 폭격을 받은 시리아에 3단계 조치를 내린 상태다.

4단계는 북한이 대규모 반격에 나서 민간기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등 상황으로 공항이 폐쇄되는 경우다. 일본 정부가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하는 단계로 외무성은 일단 한국 체류 일본인을 대피소에 피난시키거나 자택에 머물게 할 방침이다. 주변 상황이 안정되면 후방의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도록 권고한다. 이 단계에선 부산에서 선박으로 출국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면 주한미군 가족이 대피하는 등의 조짐이 있을 것”이라면서 “현시점에서 위기 단계를 올릴 예정은 없으며 냉정하게 대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문은 “사태가 긴박해지면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을 중심으로 한 미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며 “주한 미국인한테도 일본은 유력한 일시 피난처가 되는 만큼 일본인도 우선적으로 수송해달라고 의뢰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종 수단으로 해상보안청의 선박과 자위대 항공기 활용도 검토하고 있지만 자위대기 사용은 한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앞서 요미우리신문은 6일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 한국 체류 일본인과 미국인 대피를 위해 미ㆍ일이 역할을 분담하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민간 공항이 폐쇄될 경우 일단 주한미군이 육로를 이용해 부산까지 미ㆍ일 양국 민간인을 수송한다. 이어 해상자위대 수송함 등으로 부산에서 후쿠오카(福岡) 등 서일본 지역으로 민간인을 대피시킬 계획이다. 일본은 한국이 자위대 활동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수송함을 부산에 접근시킨 뒤 헬기나 소형 선박을 이용해 피난 대책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한국 체류 일본인 대피계획 검토에 착수한 뒤 미국과의 실무 협의를 통해 계속 계획을 수정해왔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