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銀 '영토 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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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은행들이 국내 소매금융시장의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금융기관끼리의 거래나 기업을 상대로 한 제한된 은행 영업에서 벗어나 그동안 국내 은행들이 독식하다시피 해온 개인 고객을 상대로 한 영업에까지 돈장사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외국계 은행들은 이를 위해 국내 은행의 인수를 추진하는가 하면, 잇따라 지점을 늘리고 새로운 금융기법을 동원한 금융상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

그 선두에는 외국계 은행으로 국내 소매금융시장에 처음 진출한 씨티은행이 서 있다. 씨티은행은 내년 초 대전.대구.광주 등 세곳에 지점을 새로 낸다는 목표로 이달 말께 금융감독원에 인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12개인 씨티은행의 국내 지점수는 15개로 늘어난다. 서울에 9개, 부산에 2개, 분당에 1개의 지점이 있는 씨티은행은 앞으로 웬만한 시중은행 못지 않은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씨티은행은 이미 이들 지역에 카드사업팀을 운영하고 있어 인가만 나면 언제라도 지점을 설치할 수 있는 상태다. 씨티은행은 특히 부자 고객들의 자산 관리에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 이들 지역의 자산가들을 놓고 국내 은행과 한판 승부를 벌일 태세다.

영국계 바클레이즈 은행은 선물과 옵션 등 파생금융상품 기법을 활용한 자산 관리 상품을 개발해 다음달께 국내 은행과 보험사들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새 금융상품은 원금 보장이라는 면에선 지수연동상품과 비슷하나 주가지수뿐만 아니라 해외채권이나 주식 등 다양한 투자 상품에 연계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경험에서 나온 차별화된 금융상품을 내세워 국내 시장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

씨티.HSBC에 이어 외국계 은행으론 국내 3위인 스탠더드차터드는 최근 한미은행 지분(9.76%)을 인수한 것을 계기로 국내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은행의 멀빈 데이비스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라며 한국시장의 장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 은행은 아예 미국계 투자펀드인 칼라일 그룹의 한미은행 지분(36.6%)을 인수해 본격적인 국내 영업에 나설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은행은 또 외환카드에도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탠더드차터드는 이와 별도로 조만간 개인 대출 업무를 시작한 후 내년 초에는 강남지점을 신설할 계획이다.

중국계 은행들의 국내 진출도 활발하다. 중국에서 둘째로 큰 중국은행은 이달 중 경기도 안산의 중국인 밀집지역에 지점을 내고 중국인 근로자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중국 3위의 건설은행도 올해 중 서울사무소를 지점으로 승격시켜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완전 개방된 상태라며 국내 은행들도 외국계 은행들의 차별화된 금융서비스에 대응하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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