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바하·베토벤이 전부가 아니었다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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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생각한다
조지프 커먼 지음, 채현경 옮김, 궁리, 370쪽, 1만5000원

어릴 적부터 피아노 음악에 빠졌던 소녀가 있었다. 이화여대 피아노학과에 들어갔다.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하.베토벤이 남긴 풍부한 건반음악의 유산. "그 음악이 왜 그렇게 아름다울까"하는 의문을 학문적으로 풀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그게 문제였다. 하바드.미시간대에서 음악역사학.음악인류학을 폭넓게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의 풍토 자체가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웬걸? 바하.베토벤 등 바로크.근대 음악을 '유일한 음악'으로 치지 않는 분위기부터 신기했다. 서구음악의 아래(비틀즈 등 대중음악)와 옆 동네(인도 등의 민속음악)에 두루 관심이 많고, 그런 넓은 멍석 위에서 서구음악의 유산을 재해석하고 있었다. 이화여대 채현경 교수가 '음악을 생각한다'를 옮긴 것은 이런 바다 건너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마침 영미권 음악학의 권위.

"음악학자들이 자국 중심주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권유는 세계음악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학자들의 연구 목표"(227쪽)라는 이 책의 발언을 보자. 1970년대 이후 인문.사회과학 전 영역에서 불었던 서구중심주의 탈피 움직임은 음악에도 적용된다. 이통에 한국이 문제다. 바하.베토벤을 마치 신앙인양 여기는 바람에 국악.대중음악에는 최소한의 관심도 없는 '외딴 섬'이 바로 한국이다. 하지만 '음악을 생각한다'는 '그리다 만 그림'이다. 이런 발언 때문이다. "나 역시 비(非)서구음악에 큰 관심이 없다. 음악인류학에 대한 내 관심은 서구정통음악을 연구할 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에 주로 맞춰져 있다."(220쪽) 서구음악이 갖는 정통성을 빛내는 소도구로 동양음악을 갖다 쓴다는 식이다. 채 교수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음악에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서구=잘난 음악' '비서구=시시한 음악'의 등식을 깨자는 것이다. 채 교수가 생각하는 새로운 음악학, 통합음악학의 목표가 그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서구의 변화와 함께 한계까지를 감 잡을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채 교수가 속마음의 일부를 밝힌'역자 후기'가 인상적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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