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이래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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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하늘은 청명한데 우리의 땅위는 너무나 암울했다. 민주화라는 희망찬 목표에 비해 그 과정은 너무나 힘든다.
지난 주말의 유세장은 그 동안 우려해온, 그러나 누구도 원치 않은 사태가 도처에서 벌어졌다.
특히 영남출신의 김영삼 후보에 대한 광주의 폭력사태와 호남출신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대구의 소란사태는 더욱 국민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집단행위인지 납득할 수 없다.
이번의 소요사태는 분명히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피맺힌 열망에도 돌을 던진 결과가 되었다. 그것은 산업사회에 걸맞지 않는 전근대적인 행위다.
그것은 국민적 염원인 민주화를 저해하는 반민주적·반국민적 탈선이며, 그들이 지지하고 나선 특정후보의 이익에 훼손되는 일이고 고장의 명예를 파괴한 우둔한 짓이다.
이런 사태의 배경적 책임의 일부는 선거에 임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 동안 후보들은 표면상으로는 지역감정의 해소를 외치면서도 실제행위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그것을 토대로 선거전략을 짜놓고 있다.
더구나『김대중씨가 이곳에 오면 우리 경남도민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광주시민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는 요지의 15일 김영삼 총재의 창원집회발언도 그 취지와 논리는 이해하나 지역감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의 현장 책임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충분히 예상됐고 행사시작 훨씬 전부터 난동행위는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다수의 경찰이 현장에 포진해있으면서도 그「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에 대해 아무런 효율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사건들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지금세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우리 국민의 수준을 재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역감정의 정치화는 5·16군사정권 이후에 현저해졌다. 그것은 주로 박정희 정부가 지역개발, 인재등용, 행정지원 등의 가치배분과정을 편파적으로 시행해 온데 있다.
자유당시절만 해도 우리 정치에서 지역대립은 심각하지 않았다. 호남출신의 야당정치인 조재천은 대구에서 다선의원으로 정치생명을 이어왔다. 영남출신의 엄민영은 민주당 때 전북에서 참의원으로 당선했다.
영호남의 지역갈등 해소는 정치지도자들의 적극적이고도 성실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집권세력은 박 정권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그 유산을 청산하는 본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유세장 소요를 없애는 대책은 중앙과 지방에서 함께 마련돼야 한다. 우선 중앙에서는 정부와 4당 대표자의 자제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하고 지방에서는 기관장과 유력한 민간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실천적 운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노력의 첫째도 둘째도 자제이며, 그것은 민주화를 위한 간절한 요구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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