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 국회」 오점남기고…허남진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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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37회 정기국회가 10일 폐회됨으로써 12대국회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국회의원 선거법등을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가 한차례쯤 남아있지만 어차피 대통령선거 이후에나 소집될 전망이고 보면 그 성격이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게 뻔하다.
따지고 보면 이번 정기국회는 한국의 현대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분수령이 된다고 할수 있다.
민주화의 새 장을 여는 새 헌법이 여야 합의로 마련됐는가하면 대통령선거법등 개헌부수법안과 언론관계법·노동관계법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않은게 없는 많은 법들이 제정· 개정됐다.
정계도 상당히 큰 폭으로 개편됐다. 제1야당이 2개로 핵분열됐고 신민·국민당이 교섭단체를 상실함으로써 정당 간판 2개가 국회의사당 안에서 사라졌으며 한때 제1야당 총재였던 정계 거물이 국회를 떠났다.
많은 의원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이합집산이 재현됐고 삭발 의원까지 나왔다. 우리 정치의 풍랑이 여실히 국회에 반영된 셈이다.
민주화를 위한 질서 재편 과정에 수반되는, 있을수 있는 진통으로 치면 그럴수도 있으려니 하면서도 이번 정기국회는 마지막 폐회일까지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고질·저급성의 단면을 표출시킨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선거운동에 바쁘고 분열·창당등에 쫓기다보니 국회 본래의 기능인 국정심의는 뒷전이어서 어느 때보다 소홀했다는 「불성실 국회」의 오점을 남기고말았다.
말로는 『선거선심예산』 『팽창예산』이라고 큰소리치면서도 예산 삭감을 위한 열도·진지성은 커녕 의사정족수가 미달돼 회의가 몇차례씩 중단되는 소동까지 빚는등 겉핥기 심의에 그치고말았다.
마지막 날 통과시킨 언론관계법같은 중요법안의 경우 정작 실질 심의가 이뤄지는 해당 상임외에서는 적당히 다뤄놓곤 이해 당사자들의 문제제기가 있자 폐기해버리거나 뒤늦게 『독소조항』이니 『위헌요소』니 하는 속기록용 발언이 나왔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5년마다 국회가 이 지경이 되는 것이 아닐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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