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 치면 인민모욕이라 합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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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를 마치고 모란봉 공원을 떠나기 직전 함께 사회를 봤던 북측 방송원 전성희씨에게 황해도 고향집 주소라도 주고 한번 다녀와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오랫동안 그냥 바라만 봤습니다."

지난 11일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 열린 8.15 특집 '평양노래자랑' 사회를 보고 12일 귀국한 실향민 출신의 원로 코미디언 송해(宋海.76)씨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전성희 방송원이랑, 최고령 출연자인 이춘봉(77) 할아버지가 나와 같은 고향인 황해도 사람들"이라면서 "비록 친형.친누이는 만나지 못했지만 형제자매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런 아쉬움도 잠시, 宋씨는 북한 주민을 만난 흥분이 더 큰 것 같았다.

"그쪽(북한) 관계자들이 출연자들과 대화할 기회를 안 줘 안타까웠다"면서도 "50년 넘게 드리워진 장막을 넘는데 왜 삐거덕 소리가 안 나겠느냐. 그걸 껴안는 게 통일로 가는 길"이라며 희망을 얘기했다. 그는 이번 '평양노래자랑'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대본을 다섯 번이나 바꿨어요. 그것도 모자라 북한에서 자꾸 협의한 걸 번복하는 바람에 녹화 한 시간 전까지 남북 제작진이 하느냐 마느냐 승강이를 벌일 정도였지요. 연출을 맡은 유찬욱 책임 PD가 혹시 녹화를 못하게 될까 덜덜 떨고 있더라고요."

리허설에서 대본에도 없는 입담을 늘어놓는 宋씨의 진행에 부담을 느낀 북측 제작진이 宋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남과 북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한국에 와 본 경험이 있는 북측 전성희 방송원이 남쪽 편을 들어 주었다고 했다. "우리 쪽 '전국노래자랑'에서는 '땡'이 나와야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저쪽(북한)에서는 '땡'을 출연한 인민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땡'도 '딩동댕'도 없이 싱겁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죠." '평양노래자랑'은 90분 분량으로 편집해 15일 오후 7시30분 KBS-1TV를 통해 방송된다.
안혜리 기자hye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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