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은 무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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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24면

강재헌의 건강한 먹거리

일러스트 강일구

일러스트 강일구

2015년 미국 식생활지침자문위원회(DGAC)는 깜짝 놀랄 만한 발표를 했다. 건강한 사람은 계란 등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식품 섭취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지침을 바꾼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식생활 지침은 이상지질혈증과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무(無) 콜레스테롤’이라는 광고나 표시가 붙어있는 식품들의 소비가 늘어나고, 계란 등 콜레스테롤이 많이 들어 있다고 알려진 식품들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이상지질혈증은 혈액 내에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된 상태를 말하며, 이상지질혈증의 관리를 통해 동맥경화를 예방함으로써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혈중 지질 수치는 평소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혈청 지질 농도에 영향을 미치는 포화지방, 트랜스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섭취 등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식생활 지침이 이처럼 바뀐 것일까?

미국 식생활지침자문위원회에서 지침을 바꾼 이유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 콜레스테롤 함유 식품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심장병 발병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우리 몸의 콜레스테롤은 식품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10~30%이고, 나머지는 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계란은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많아 오랫동안 이상지질혈증 예방을 위해 섭취가 제한되는 식품으로 인식돼 왔으나,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계란 섭취와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과의 연관성이 불분명하다. 1966년부터 2012년까지 전문학술지 검색 사이트의 문헌들을 분석한 결과, 계란을 매일 하루 한 개 섭취 시 심장질환과 뇌졸중의 위험도와 관련성이 없었다. 또한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과 육류 섭취량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많은 논란이 있다.

반면에 최근 많은 연구에서는 트랜스지방이나 포화지방이 많이 들어있는 도넛,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가공식품과 피자,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 그리고 당류가 많이 들어있는 단 음료수가 이상지질혈증과 심혈관질환의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계란이나 육류 섭취가 혈중 지질 수치에 영향을 주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근거가 부족하다. 계란과 기름이 적은 육류 등의 가공되지 않은 식품은 적정 수준으로 고루 섭취하고,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의 섭취를 최대한 제한하는 것이 심혈관질환 예방의 지름길이다.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 환자는 여전히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식품 섭취를 줄여야 하지만, 이러한 질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은 하루 계란 한 개 정도 섭취하고 적정량의 저지방 육류를 섭취해도 심장병 발생 위험이 높아지지 않으므로 안심해도 좋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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