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허가해준지 6개월…'민영 건보' 왜 안나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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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가 지난해 8월 생명보험회사에 실손형 건강보험의 판매를 허용했지만 6개월째 생보사들이 상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신상품 판매가 허용되면 곧바로 시장에 내놓던 보험사들의 행태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병원을 찾았을 때 공영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도록 고안된 실손형 건강보험은 고령화.웰빙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시장 규모에 비해 상품 판매에 따른 위험이 너무 높아 주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과거 병력을 속이거나 과잉 진료를 받더라도 이를 거를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올해 안에 실손형 건강보험 상품을 내놓지 않을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병원-보험-고객 간 네트워크 구축이 완벽하지 못하고 시장성도 검증되지 않아 당분간 상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객의 과잉 진료나 치료비 부풀리기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국 병원에 대한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적인데 아직 이러한 시스템 구축이 완전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예컨대 고객이 1만원짜리 주사로도 가능한 치료를 10만원짜리 주사를 맞고 보험금을 청구해도 속수무책일 수 있다.

대한생명은 금융감독원에 상품 인가 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다. 당장 이 상품을 급박하게 만들 이유도 없고, 돈벌이가 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업계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해야 위험이 줄어드는 데 공동 상품안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며 "상품 판매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보생명도 고객의 병력 정보 공유, 과잉 진료 예방책 등이 마련되지 않아 상품 판매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고객이 예전에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병력 정보를 알아야 하지만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며 "병력 정보를 알아야 보험료를 정확히 산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고객의 과잉 진료 등을 막기 위해 가입자가 비용의 일정비율(20~40%)을 부담하거나, 10년짜리 보험이더라도 매년 보험료를 새로 산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실손형 건강보험이란=건강보험관리공단이 보험금을 지급하고 남은 개인 부담분 치료비를 민간 보험사가 대신 내주도록 만든 보험상품. 예를 들어 보험 가입자의 수술비 100만원 중 70만원은 공영 건강보험에서 지급하고 개인 부담분이 30만원이라고 한다면 보험사가 30만원을 가입자에게 지급해 준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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