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미국 대 중화의 꿈, 한반도서 꿈틀거리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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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세기에 떠오르는 도시 국가 아테네와 기존의 맹주 스파르타는 그리스와 지중해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내용이다. 2400여년 후 신흥 강국 중국과 수퍼파워 미국의 두 정상이 6일(현지시간) 국제 질서의 패권을 놓고 마주 앉는다. 2400여 년 전 패권국 스파르타와 신흥국 아테네의 지중해 충돌의 그림은 이제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격돌로 치환됐다.


 신흥 강국과 기성 대국 간의 패권 다툼이 극단적인 경우 전쟁으로 번진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용어를 만든 이는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다. 그는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떠오르는 중국은 미국이 쌓아온 지배력에 도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500년간 16차례의 신흥 강국과 기성 대국간 충돌 중 12차례가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에 대항한 독일의 세계대전과 미국에 도전한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대표적 사례다.

 미ㆍ중이 당장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없다는 게 국제 사회의 상식이다. 하지만 전쟁까지는 아니어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방불케 하는 미ㆍ중의 패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 최전선의 하나가 한반도다.

 앨리슨 교수가 “두 사람은 거울에 비친 서로의 모습”이라며 닮은꼴로 묘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서로의 상대가 되며 양국 대결은 더욱 분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미국’을 선언했고 시 주석은 ‘중국의 꿈(中國夢)’을 내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중 "중국이 우리를 뜯어 먹고 있다"며 중국을 거세게 비난했다.
 반면 시 주석은 신형 대국관계를 전면에 내세워 중국을 미국에 버금가는 대국으로 인정해 사실상 중국의 역내 패권을 존중하라고 요구한다. 하워드 프렌치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하늘 아래 모든 것』에서 “중국은 아시아에서 누렸던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중화(中華)의 부활이다.
 하지만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자신의 책 『섭리 이상으로』에서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도 아태 지역에서 배타적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양국의 충돌 지점은 무역과 남중국해 그리고 북한이다.
 모두 백악관이 미ㆍ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라고 알린 현안들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지난 3일 정상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생산적으로 거론하려 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군 함정과 전투기의 진입 금지를 요구하고 있는 남중국해를 놓고도 “미국은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에선 비행과 항해를 계속한다”고 단언했다.

 무엇보다 미ㆍ중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대상은 북한이다.
 김정은 정권이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준비로 양국 충돌에 불을 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하루 앞둔 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혔다고 아베 총리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북한은 우리가 떠안은 또 하나의 책임"이라고 밝힌 뒤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내 책임이 될 것”이라고 북핵 해결의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이는 1차적으론 중국이 대북 경제 제재에 올인하도록 만들겠다는 중국 압박을 뜻한다.
 이어 군사 행동 역시 선택에서 배제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CNN은 미국의 향후 대북 접근을 놓고 군사 행동도 시나리오 중 하나에 포함시켰다.

반면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원칙으로 내세우면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를 배치하는 한국에 보복 조치로 나서 북핵보다는 오히려 한반도의 미군 전력 증강을 더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가 싫지만 미국의 개입을 더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핵을 추구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불안감은 다른 측면에서도 미ㆍ중 충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북한이 혼란에 빠질 경우 미국은 특수부대를 동원해 (북한 내) 핵 탄두 파괴에 나설 수 있다”며 “그러나 북한 핵 시설이 중국과의 국경에 더 가까운 지역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중국 특수부대가 미군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정권의 붕괴도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대규모 난민의 유입을 우려한 중국은 북한에 군대를 보낼 수 있고 한국 정부 역시 군을 북으로 올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연합사 체제인 만큼 이 경우 미군과 중국군의 교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앨리슨 교수의 진단이다.

 미·중이 북핵 해법을 놓고 충돌하고 있지만, 정작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하는 핵심 당사자인 한국은 양강 대결 구도에서 존재감이 없다.

 6일 시작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은 양국 관계의 분기점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한발 더 나아갈지 아니면 갈등을 진정시킬지가 정해진다. 

 앨리슨 교수는 기고에서 “이젠 트럼프와 시진핑 두 사람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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