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중국이 안 나서면 북핵 혼자 해결 트럼프의 초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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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지 않으면 미국은 ‘단독 조치(unilateral action)’를 취할 것이다.”

25년 이어온 중국역할 배제 #전례 없던 대중 압박 선언 #시진핑과 정상회담 앞두고 #무역이슈도 연계 뜻 밝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 중국이 기존의 미온적 태도를 지속할 경우 중국이라는 ‘지렛대’를 버리고 독자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5~6일 플로리다주 자신의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1차 대북정책 리뷰의 핵심이 전례 없는 수준의 대(對)중국 압박임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도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돕기로 하면 중국에 좋을 것이지만 안 그러면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 없이 북한을 일대일로 상대하겠다는 의미냐”는 질문에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전적으로(totally)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어 “(중국이 돕게 할) 유인책이 뭐냐”는 질문에 “무역”이라고 밝혀 관세·환율 등 중국과의 무역 이슈를 북핵 문제와 연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불공정 무역’ 압박을 받지 않으려면 시진핑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는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은 끝났고 비핵화를 위한 20년 대화는 실패했다”고 강조해 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대북 식량과 에너지 지원이라는 핵심 키를 갖고 있으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북제재 조치에 소맷자락 잡는 역할을 해온 데 대한 정면 공격인 셈이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로 북핵 위기가 시작된 이후 25년째 이어진 북핵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무역 문제를 연계하거나 단독 플레이를 하겠다며 압박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의 언급이 당장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FT는 “대북 선제공격이 아니라면 미국은 중국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며 “미국은 보다 효과적인 대북제재에서부터 보다 논쟁적인(controversial) 다양한 비밀작전(covert action)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중국, 미국 돕지 않으면 좋지 않을 것” 

정부 당국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이 지나치게 약했다고 평가한 후 ‘전략적 인내’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며 “중국을 강하게 압박해 북한이 진지하게 비핵화 대화에 나오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력한 중국 압박→중국의 북한 압박→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비핵화 회담 돌입 수순을 밟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단독 조치’와 관련해선 북한의 경우 군사적 옵션이 포함되고, 중국에는 ▶유엔 제재를 위반한 개별 중국 기업에 무관용 원칙 적용 ▶세컨더리 보이콧 등이 거론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세컨더리 보이콧에 이어 중국을 배제하고 북·미 간 논의 가능성을 열어둬 중국을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그동안 6자회담 재개와 단계적 접근법을 주장해왔다.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 핵을 동결하고,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논의한 뒤 다음 단계로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외교부 차관)는 “미국은 중국이 제안한 단계적 접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북한이 비핵화에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면 그때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6차 핵실험이 임박한 상황에서 올해야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트럼프가 미국의 국익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중국을 압박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김수정 라이팅에디터·차세현 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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