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장롱예금 43조엔 돌파...부유층 현금 선호도 한몫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 현금을 집에 보관하는 ‘장롱 예금’이 갈수록 늘고 있다.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 조사 결과, 지난 2월말 현재 일본의 장롱예금 액수는 지난해보다 8%포인트 늘어난 43조엔으로 집계됐다. 증가액 3조엔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0.6% 규모다. 장롱 예금은 일본의 지폐 발행 잔고(2월말 현재 99조엔)에서 결제 등 사용액을 뺀 금액이다. 반면 지난해말 기준 정기예금 잔고는 약 245조엔으로 1년전보다 3.9%포인트 줄었다. 

장롱 예금 증가는 일본은행이 지난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하지만 부유층의 현금 선호와 세무 당국의 감시 강화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3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장롱 예금 증가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상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메가뱅크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0.01%로, 100만엔을 예치했을 경우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이자가 연 300엔에서 100엔으로 줄었을 뿐이다. 예금이 갑자기 움직일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여기에 현금 보관 비용은 만만찮다. 금고 가격은 약 20만엔인데다 주택의 보안 설비료까지 합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그런데도 장롱 예금이 느는 것은 부유층에 대한 세무당국의 포위망과 맞물려 있다. 가장 큰 계기는 지난해 당국이 ‘재산 채무 조서’ 제출을 의무화한 조치다. 2015년 1월 실시된 상속세 증세에 따라 지난해부터 3억엔 이상의 재산 소유자 등은 자산 내역을 명기한 조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조서는 향후 상속세를 과세할 때 참고자료가 된다. 한 세무사는 니혼게이자이에  “(상속세를) 탈세할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유층은 당국이 캐고드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금의 움직임이 포착되기 쉬운 은행 예금을 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장롱 예금 증가로 금고 업체에는 1억엔~2억엔의 금액이 들어가는 금고 크기 등에 관한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판 주민등록번호인 마이넘버 제도 시행으로 자산 내역이 당국에 파악되는 것을 꺼리는 점도 금고 수요를 부르는 요소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구마노 히데오(熊野英生)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유층의 동향이 장롱 예금을 늘리는 한 원인”이라며 “당국의 감시 강화 등에 대한 경계심의 근저에는 일본의 재정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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