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1902∼ )은 두말할 나위없이 30년대 우리 시단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의 한 사람이다. 6·25때 납북돼 지금은 생사도 알 수 없는 시인이고, 시집들 또한 아직까지 부당하게 금서로 묶여있으나 문단사람들치고 그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향수』는 그외 대표작 중 하나로 떠나온 고향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영롱하고 따뜻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문인들의 술자리에서는 반드시 한번쯤 낭송되고 있는 시. 금빛으로 펼쳐진 그림 속에는 이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지금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