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법과 원칙에 따른 김수남의 결단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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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가 어제 원만히 마무리돼 다행이다. 조서 작성과 검토에 모두 21시간가량이 걸렸을 정도로 진지했고, 예우 문제에서도 잡음이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지시한 사실이 없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반박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미 확보한 물증과 진술을 토대로 형식적인 ‘부인(否認) 조서’를 수집하겠다는 목적을 충족했기에 불만이 없다는 입장이다. 소환조사를 마친 이상 이제는 구속 여부를 결정할 단계로 접어들었다. 검찰은 진술 내용의 ‘성실성’을 두고 판단할 것이다.

구속영장 청구의 판단은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달렸다. 시중에는 구속과 불구속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건의 정점에 있고,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뇌물 공여자를 구속했으니 뇌물 수수자인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게 형평성에 맞는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김 총장은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는 반론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마당에 인신을 구속해 얻을 수 있는 실효적 이익을 따져봐야 한다. 파면으로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은 전직 대통령에게 인신 구속이라는 2차 징벌을 가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일단 불구속 기소를 하고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온 뒤에 상응하는 벌을 줘도 늦지 않다.

검찰은 “신중하게 판단하되, 오래 끌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누워버리는 풀’이 되는 검찰의 모습은 결코 안 될 일이다. 구속하자는 강경론에 밀려 일단 영장을 청구해 버린 뒤 법원에 구속 여부 판단과 책임을 떠넘기는 면피식 태도는 더더욱 곤란하다. 정치에 휘둘리거나 ‘촛불’과 ‘태극기’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른 김 총장의 결단이 요구된다. 그게 검찰의 권위와 신뢰를 되찾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