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7. 첫 이성 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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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60년대 중반 방송에 출연한 애드훠. 필자(맨 왼쪽)는 여가수와 일할 때 종종 오해를 받곤 했다.

신중현 사단은 걸출한 여가수를 많이 배출했다. 그러다 보니 내 여성 편력이 꽤나 화려했던 것으로 종종 오해받곤 한다. 일반 대중과 언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마저 색안경을 끼고 보긴 마찬가지였다. 여가수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그같은 오해가 생긴 것이다. 나는 신곡을 연습할 때 다른 사람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가수와 붙어 있는 편이다. 욕심이 많아서였다. 음악적 욕심 말이다.

가수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처럼 구는 방법도 있지만 친근하게 접근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 사랑과 실연에 대한 노래를 부를 땐 그런 대화를 깊이 나누면서 감정을 이입시켰다. 말을 곱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때는 욕설도 내뱉었고, 야한 말을 입에 담을 때도 있었다. 한 소절을 가지고 30~40분을 붙잡고 늘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그것밖에 연습을 못했나, 대체 둘이서 뭘 한 걸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신중현 사단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년 초. '신중현이 여가수 아무개랑 호텔에서 나오더라'는 식의 스캔들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기사를 보자마자 신문사로 달려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호텔 근처에 간 적도 없는데 그런 기사가 나오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땐 젊었고 성격도 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자랑 거리가 먼 편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성을 접한 건 미 8군 무대 생활에 적응해 가던 1956년께였다. 미 8군 스케줄이 없는 날엔 지방 공연을 다녔다. 처음 공연을 하러 간 어느 지방에서였다. 한참 연주를 하고 있는데 상당히 예쁜 아가씨가 객석에서 자꾸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했다. 감은 잡았지만 쑥스러워 눈조차 마주칠 수 없어 연주에만 몰두했다. 고개를 한 번도 들지 못하고 공연을 마쳤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운 다방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한 잔 했다.

"서울에 편지할 테니 주소 좀 가르쳐주세요."

그녀에게 하숙집 주소를 적어 주고는 헤어졌다. 지방 투어 공연을 다 마치고 서울에 도착했다. 미 8군 쇼를 끝내고 자정이 넘어 집으로 갔다. 당시 나는 하숙집 뒷문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뒷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여자였다. 섬뜩했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그녀였다.

"아니, 이 늦은 시각에 어떻게 여길?"

밤이 너무 깊어 그녀를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함께 밤을 보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이 걱정스러웠다. 또 가정 생활을 꾸릴 형편도 성격도 못됐다. 그녀를 일부러 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내게 귀띔했다.

"만취한 어떤 여자가 회사 앞 다방에서 행패를 부리면서 신형을 찾는데요."

내가 만나주지 않자 내가 소속된 연예회사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린 것이다. 아무 일이 없어 어렵사리 수습은 됐지만 단단히 혼이 났다. 여자가 무서운 존재라는 걸 그때 알았다. 한동안 여자의 그림자까지 조심했다. 이 같은 습관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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