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자 많은 쇠고기 무관세 앞당기자 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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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공식화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발효 5년째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품목별 관세 철폐시기 재협상 유력 #적자 많은 철강 등은 연기 요구할 듯 #FTA 파기하지 않고도 조정 가능

이미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일 보고서를 통해 “한·미 FTA를 포함, 여러 무역협정에 대한 접근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악의 경우는 한·미 FTA 파기지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가 의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FTA를 파기하기는 어렵다. 또 한·미 FTA로 혜택을 보는 낙농업체 등의 반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좀 더 가능성이 큰 건 재협상 요구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FTA는 통상법에 따라 발효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협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게 돼 있다”며 “협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순 없지만 FTA를 강화하는 ‘업그레이드 개정’은 한국 정부도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만일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핵심 전장(戰場)은 ‘관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미 관세가 철폐된 품목에 대해 다시 관세를 부과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 연구위원은 “이미 무관세가 된 품목에 다시 관세를 부과하는 건 FTA를 파기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FTA를 유지하면서 일방적으로 관세를 재부과한다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아직 관세가 부과되는 품목의 향후 ‘관세 철폐계획’을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조정하는 방식의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미 FTA는 품목별로 최장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도록 규정돼 있다. 관세 철폐시기의 조정은 FTA 파기가 아닌 재협상으로 가능하다.

미국은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공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시기를 조정하는 전략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각각 4~6%와 25%의 관세율이 적용되는 한국산 철강과 화물자동차의 경우 관세 철폐시점이 2021년인데 이를 뒤로 연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미국에 유리한 농산물 등은 관세 철폐시기를 앞당기려 할 수 있다. 쇠고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시장점유율은 2007년 6.4%에서 지난해 42.6%까지 상승했다. 2026년인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 철폐시기가 앞당겨지면 미국의 대한 쇠고기 수출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FTA 재협상을 서비스시장 개방 확대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박성훈 교수는 “미국은 자국이 강점을 가진 법률·회계·의료 분야의 한국 진출을 지속적으로 타진해 왔으며 한국의 개방 속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며 “이들 분야의 개방을 가속화하려는 목적에서 재협상 요구를 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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