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눈 치우기 조례'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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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영·호남 지방에 많은 눈이 내려 교통사고 등 피해가 속출했다. 그러나 일부 지역 주민은 '내집 앞 눈 치우기'에 적극 나서 도로소통을 도왔다. 평균 4㎝ 안팎의 눈이 내린 부산의 골목길에서 주민들이 나서 눈을 치우고 있다(사진위). 울산 간선도로에 눈이 쌓이자 출근길 운전자가 스노체인을 달고 있다. [연합뉴스]

4㎝가량의 눈이 내린 6일 오전 10시쯤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2동 동의의료원과 연결된 고지대 비탈길. 눈만 오면 교통이 마비되던 경사 60도의 길을 차량들이 수월하게 오르내렸다. 밤새 내린 눈을 주민이 말끔히 치웠기 때문이다.

양정2동사무소 김동민(50) 사무장은 "오전 6시쯤 방송을 통해 '눈 치우기' 조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며 "주민 100여 명이 오전 9시까지 양정 1, 2동 고지대 비탈길 눈을 치웠다"고 말했다. 자기 집 앞에 쌓인 눈을 스스로 치우도록 하는 눈 치우기 조례가 눈에 취약한 도시 부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조례에 따라 골목길 눈을 치운 지역에선 큰 피해와 불편이 없었으나 그러지 않은 지역에선 예전과 같은 불편을 겪었다.

◆ 빛본 '내집 앞 눈 치우기' 효과=부산의 대표적 고지대인 동구 수정.좌천.초량동 일대도 주민이 눈을 치웠다. 덕분에 골목길도 평소처럼 차량이 원활하게 다녔다. 비탈길에서 미끄러진 차량도 거의 없었다. 이 지역은 지난해 3월 폭설로 3일간 교통이 마비됐었다. 동구는 지난해 12월 30일 눈치우기 조례가 제정됐다.

중구의 영주2동 고지대 주민 200여 명도 눈을 치워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초량1동사무소 박세웅(44) 사무장은 "눈 피해를 많이 본 고지대 주민이 눈 치우기에 적극 참여했다"며 "앞으로 눈 피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칠형정 주민 100여 명은 마을 이장의 안내방송에 따라 오전 8시쯤부터 도로에 쌓인 눈을 치웠다.

지난해 11월 29일 눈치우기 조례가 제정된 함양군에서는 이날 새벽 11개 읍.면 255개 마을이 눈 치우기에 나섰다. 이 때문에 이곳에선 눈으로 인한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부산시 남구.해운대구.서구 등 조례가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선 주민이 눈길에 미끄러지는 등 출근길 불편을 겪었다. 남구 대연동 D아파트 뒤편 도로에서는 이날 오전 소형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도로변에 주차돼 있던 10여 대의 승용차와 부딪쳤다.

김영환(43.회사원.남구 문현동)씨는 "마을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눈길에 수차례 미끄러지면서 20여 분을 걸어 지하철역에 간신히 도착했다"고 말했다.

◆ 눈 치우기 조례=지난해 7월 개정.시행된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자치단체가 건축물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제설 및 제빙 작업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눈을 치워야 하는 구간은 ▶보도는 건축물 대지에 접한 구간 전체▶이면도로와 보행자 전용도로는 대지 경계선부터 도로의 중앙부까지다. 눈을 치우지 않더라도 형사처벌이나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가 집주인 등에게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부산은 16개 구.군 중 12곳에서 조례를 제정했다. 경남도는 20개 시.군 중 창원.마산.함양 등 3곳이 조례를 공포했다. 서울은 지난해 12월 시의회에서 조례안을 부결했다.

부산=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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