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감사결과발표] 유령 농장 차려 돈 빼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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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니 돈 관리는 어설프게 처리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춰보니 돈세탁까지 하는 등 기업 뺨 칠 정도의 수법을 사용해 최종 사용처를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연구비 집행내용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한 감사원 관계자는 황 교수의 자금관리 방식이 '프로급'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 "위장 회사 통해 횡령"=황 교수가 돈을 빼돌린 수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연구원 통장을 관리하며 입금된 인건비를 개인통장으로 빼가는 것이었다. 황 교수는 2001년 이후 정부에서 광우병 내성 소 개발 등 4개 연구과제를 따냈다. 여기에 참여한 연구원 65명 중 53명의 통장과 인감을 자신이 고용한 여직원을 통해 관리했다. 미즈메디 연구소 등 외부 참여자를 제외한 서울대 연구원 전원의 인건비 8억1600여만원이 이 방식으로 황 교수 통장으로 흘러갔다.

황 교수 측은 "연구원 인건비, 숙소 임차료 등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지만 증빙자료가 전혀 없었다. 또 개인 계좌로 흘러들어온 다른 돈과 뒤섞여 정확한 인건비 지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위장 기업을 통해 연구비를 빼내는 수법도 동원됐다. 황 교수팀은 2004년부터 1년간 실험용 돼지 494마리와 송아지 2마리 구입비 명목으로 2억여원을 수의대에 신청했다. 수의대 측은 신청서에 적힌 판매 농장 계좌에 요청한 금액을 송금했다. 그런데 감사팀이 자금 흐름을 따라가 보니 농장주에게 송금된 금액이 그대로 황 교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수의대에서 돈을 보낸 농장주는 수의대 소속 교수가 가르치는 대학원생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전형적인 위장 회사 건립을 통한 자금횡령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 치밀한 돈세탁=감사팀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황 교수의 치밀한 돈세탁 수법이었다. 개인계좌를 9개나 만든 뒤 공식적인 자금을 빼내오면 여기에 넣어 비공식적인 후원금과 섞었다. 이들 계좌 간 입출금도 빈번했다. 특히 일단 개인계좌로 들어오면 꼭 현금으로 출금해 사용처를 숨겼다. 감사원 전략감사본부 박의명 심의관은 "수표로 빼간 돈도 있지만 다시 현금화하는 등 세탁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용처 확인은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간기업에서 지원금을 쉽게 받기 위해 신산업전략연구원이란 공익재단을 이용하기도 했다. 본인의 자금 사용은 물론 기부하는 기업이 회계처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황 교수는 이곳에 개인적으로 여직원을 고용해 자금을 관리하며 7개 기업으로부터 61억원을 받아 이 중 40억원을 빼내갔다. 이 때문에 의심스러운 자금은 70억원이 넘지만 최종 확인된 사용처는 거의 없다.

◆ 돈 어디에 썼나=황 교수는 이 돈을 외국 학자들에게 '거마비'로 주는 데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수많은 유명 학자를 한국으로 불렀는데 이때마다 많게는 1만 달러 이상을 체류비와 교통비 등으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많은 외국 학자가 왔고 돈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정확히 얼마나 줬는지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선종 연구원 등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된 연구원에게 건넨 5만 달러도 이런 자금 중 일부인 것으로 환전 내용 추적결과 밝혀졌다.

과학재단에서 받아온 18억원 중 7억원을 지난해 10월 7일 1년짜리 정기예금에 넣어둔 것도 눈에 띈다.

이 시점은 이미 PD수첩팀에서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에 대한 검증작업을 하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거액을 예치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황 교수는 이에 대해 "당장 쓸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운용 차원에서 넣어둔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감사원 관계자는 전했다. 황 교수는 정치인 후원금을 제공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10명 이내의 정치인에게 100만원 정도씩 보냈다는 진술만 할 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고 감사원 관계자는 밝혔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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