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빗나간 58, 현찰 20집에 눈이 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2국
[제4보 (49~69)]
白.도전자 曺薰鉉 9단 | 黑.왕위 李昌鎬 9단

흑▲가 백 두점의 사망을 선고할 때 무슨 소리냐며 백△의 잽이 날카롭게 날아든다.

曺9단은 권투선수로 치면 '잽' 하나로 웬만한 상대들을 눕혀왔다. 어떻게 받을 것이냐고 묻는 지금의 백△에서도 잽의 마술사 조훈현의 진면목이 느껴진다.

49는 온당하다. 58쪽에서 막는 것은 맛이 너무 나빠 한눈에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50의 절단은 예정 코스. 그러나 이 수가 떨어진 뒤 李9단의 장고가 끝없이 이어진다.

검토실에선 '참고도1'처럼 두어도 별 탈이 없는데 무슨 장고를 그리 오래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드려다보면 백A가 선수임을 알 수 있다(손을 빼면 B가 있다). 따라서 어딘가 응수를 해야 하는데 그때 백C로 두면 흑▲ 한점이 끊긴다.

그 한점이 끊어지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李9단은 그런 불안을 안고서는 큰 일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51, 53으로 후퇴했다. 가슴아픈 실리의 손해를 감수하며 두터움을 선택한 것이다.

한데 曺9단은 호박이 덩굴째 굴러온 듯한 이 이득 때문에 마음이 너무 푸근해진다. 58의 이음은 무려 20집짜리 현찰. 그 현찰이 눈앞에 아른거려 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

56은 59 자리에 두어야 했지만 그건 소소한 실수에 해당한다. 문제는 58. 이 수는 '참고도2' 백1이 대세의 요소였다.

백1에 먼저 지킨 뒤 D와 E를 맞보기로 해야 했다. 사실 E가 20집짜리 현찰이긴 하지만 D의 곳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曺9단은 그러나 뭔가에 홀린 듯 곧장 58로 달려갔고 하변 일대는 흑이 먼저 손을 쓰면서 쉽게 파괴되고 말았다.

李9단이 눈물을 흘리며 51로 후퇴한 것이 결국 李9단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으니 세상만사는 역시 새옹지마(塞翁之馬)인가.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