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원이 왜 공개했나… 미묘한 시기에 NSC 내부 문건 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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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두 차례에 걸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부 문건' 공개가 민감한 파장을 낳고 있다. 최 의원은 미국과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관련해 1년 전에 불거졌던 '대통령에 대한 부실보고 논란'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당시 NSC 사무차장이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 후보자다.

여당 의원이 나섰다는 점이 우선 주목된다. 이 후보자 지명 직후부터 여당의 임종석 의원 등 일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의원은 "독선, 월권 논란의 당사자가 야당의 협력이 절실한 남북 관계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을 해왔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까지 북한 전문가인 그가 통일장관과 함께 NSC 상임위원장을 겸임,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데 대해 우려를 제기해 온 상황이다.

시점도 미묘하다. 이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를 코앞에 두고 문서가 여당에 '유출'됐다는 점 때문이다.

사태의 뿌리는 지난해 4월로 거슬러 간다.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외교안보팀의 대미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이종석 NSC 사무차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 문재인 민정수석, 천호선 국정상황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실상의 '청문'을 받았다.

외교부가 이미 2003년 10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각서를 미 정부와 교환했는데 노 대통령이 2005년 3월 공사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에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혼선이 빚어진 과정을 문제삼은 것이다. NSC가 대통령에게 각서교환 보고를 누락한 게 청문의 요지였다. 그 청문 모임에서 오간 내용을 담은 문건이 지금 최 의원에게 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교각서가 오갔는데 청와대.NSC가 몰랐다면 수수께끼"(박상식 전 외교안보연구원장), "NSC의 회의록 유출 자체가 중대한 사안"(강원택 숭실대 교수)이라는 반응이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서도 이종석 차장은 정권 내부에서 적잖은 논란에 시달렸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선 이 차장이, 자주파에 가까웠던 당시 외교부의 조약국 라인이나 청와대 내 386 세력 대신 협력적 대미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부 북미 라인의 손을 들어줬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민정수석실이 비공개 조사에 나섰고 이를 전후해 기밀 문서가 야당, 진보적 인터넷 매체로 누출됐다. 지난해에는 이종석 차장 휘하의 NSC 출신 인사가 외교부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약국장으로 이동하면서 고질적 혼란에 대한 진화 시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권과 부처에서 정보 독점, 자기 인맥 심기 등의 비판을 받아 온 이 후보자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된 모양새"라고 했다.

최 의원의 문건 공개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실무 차원의 각서 초안일 뿐"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2월 6, 7일의 이 후보자 청문회는 외교부와 NSC, NSC와 청와대 소속 기관의 불협화음 등 그간 외교안보 분야에서 은밀히 넘어가 왔던 문제점이 드러날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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