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기자의생생무대] 거품 빼면 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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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공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필름과 무대, 혹은 무한 복제와 일회성?

나는 두 장르의 차이는 '표 값'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영화는 싸다. 7000원. 더 중요한 것은 값이 '균등하다'는 점이다. 제작비 수백억원대 블록버스터건, 구질구질한 B급 영화건 값이 똑같다.

반면 공연은 비싸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1만원짜리 소극장 연극부터 10만원을 훌쩍 넘는 대형 뮤지컬까지. 따라서 단순히 재미 있느냐 없느냐, 혹은 작품성이 뛰어난가 아닌가 식의 평가와는 다른 잣대가 공연엔 적용돼야 한다. 이를테면 '가격 대비 만족도'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문구 하나가 관객들에겐 더 유익할지 모른다. "이 공연은 무척 감동적이지만 10만원 내고 보기엔 조금 아깝다. 7만원이면 한번 고려해 보겠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라는 기준이 작동하면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가슴을 치는 노래, 유려한 프랑스어의 감미로움, 현대 무용의 총합 등 숱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VIP 티켓 20만원'은 너무 비싸다. 가격만 단순 비교하자면 이 공연이 과연 영화 '왕의 남자'보다 30배나 많은 감동을 줄까. 프랑스 현지 공연 땐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7만~10만원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짜증이 난다.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극작가 한아름(29)씨는 좋은 좌석은 아니지만 1만5000원에 '노트르 담 드 파리'를 관람했단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공연이 이렇게 비쌀까. 혹자는 몇몇 국내 공연기획사끼리 과다 경쟁을 하는 탓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불, 그 몫이 고스란히 티켓이 반영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프랑스 제작사와 국내 수입사 중간에 낀 브로커가 수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원가가 높아졌다고도 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공연이라기보다 이벤트로 생각해'한탕'을 노린 국내 기획사의 욕심이 티켓 값을 올린 배경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노트르 담 드 파리'는 지난해에도 VIP석을 20만원에 팔았다. 뮤지컬로는 첫 20만원대였다. 덩달아 다른 공연들도 값을 1,2만원씩 슬그머니 올렸다. 올해도 4월 무대에 올려지는 뮤지컬 하나가 티켓을 16만5000원에 팔고 있다. 정식 공연장도 아닌 2000석 규모의 체육관에서 하는 뮤지컬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선 상당 기간 95달러가 불문율처럼 최고가였다. 처음으로 100달러짜리 티켓을 내놓은 게 2001년 '프로듀서스'였단다. 단 5달러 올리는 데 십여년을 기다린 것이다. 브로드웨이라고 티켓 값이 오르면 수익이 늘어난다는 걸 몰랐을 리 만무하다. 다만 그들은 공연 관람을 '이벤트'가 아닌 '일상'으로 간주해 들쭉날쭉한 가격이 아예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했다. '예측 가능한 일'이 될 때 저변도 넓어지고, 시장도 커지고, 길게 보면 수익도 많아지는 게 아닐까.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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