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 해제|지적 소화력도 길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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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그동안 묶어놓았던 6백36종의 이념서적 가운데 4백19종을 풀기로 했다. 금서의 3분의2에 해당되는 대폭적인 해제다.
출판문화에 대한 이같은 개방주의 조치는 환영 받을만한 몇가지 논리를 갖고 있다.
첫째는 오늘날과 같이 인쇄· 복사의 기술이 고도화되고 시설이 대중화된 시대엔 출판의 금지 자체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에도 수천종씩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을 정부가 무슨 수로 일일이 검토하고 통제할 것인가. 그것이 고도의 전문성 도서일 경우 특히 그렇다.
그 결과 지하출판이 번성하여 금서라 해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얻어볼수있는 것이 현실이다. 엄연한 판금도서로 돼 있는「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번역판이나 월북작가의 작품들이 시중서점에서 버젓이 시판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둘째는 보편성 있는 지식의 보급을 제한하는데 한계가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비록 우리 체제에 반대되거나 그것을 비판한 출판물일지라도 그것이 세계적 지식체계의 하나라면 우리 지식인이나 국민들도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세계는 더욱 국제화된다. 이에따라 우리 청년들이 세계의 다른나라 청년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쪽 세계를 모르는체 경쟁에 뛰어든다면 수영선수가 물의 깊이와 온도를 모르고 뛰어드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공산혁명을 위한 전략서적등 우리 체제에 직접 위협이 되면서 학문적 가치가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될수록 개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 현실상 이념도서의 개방에 부작용이 따르는 것을 무시할수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무균실에서만 격리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이념적 저항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금서의 해제와 함께 그 충격을 흡수할수 있는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우선 건전한 이념교육을 균형있게 확대함으로써 좌경사상을 충분히 소화해 낼수 있는 지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지금까지는 좌경사상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에 대한 비판위주의 교육에만 치중했다. 그 결과 교육효과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거부감만 키워왔다. 이것은 앞으로 대학 스스로가 해결해야할 과제다.
다음은 건전한 이념서적 출판의 활성화다. 지금 시중 서점가에는 출처불명의 좌경사상 해설서가 범람하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 일본에서 출판된 책들을 우리 출판사들이「본사 출판부편」이라는 이름으로 무책임하게 내놓은 책들이다. 우리와는 주위환경과 국가발전단계가 다른 일본인의 안목과 척도로 어떤 이념을 파악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늘의 세계 이념은 크게 양분돼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비마르크스주의다. 이 사상체계의 양면을 균형있게 체득할 때 우리 체제의 수호와 발전, 상대체제와의 경쟁과 비판이 가능하다.
정부의 이번 금서해금은 우리 국민의 새로운 이념무장과 균형있는 지식체득의 계기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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