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ㆍ은행 두 협회장의 ‘운동장론’ 대결…황영기 ‘기울어진 운동장’ VS 하영구 ‘종합운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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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신탁업법 제정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와 은행권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2주 간격으로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박을 벌였다.

먼저 포문을 연 건 황영기 회장이다. 황 회장은 지난 6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은행ㆍ보험에 비해 금융투자업계가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증권사에 기업 지급결제와 외화환전이 허용되지 않는 것을 대표적인 불합리한 대접으로 꼽았다. 아울러 국내 은행권의 비효율성을 비판했다. 그는 “국내 은행의 인당 영업이익은 세계 최저이고 수익비용비율은 너무 높다”면서 “은행은 비용효율화부터 해야 한다”고 지정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황 회장이 이렇게 맹공에 나선 건 금융위원회가 오는 10월까지 신탁업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이에 대해 “은행이 수익성이 떨어지니까 신탁업을 통해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고 한다”면서 “증권업계가 예금을 받겠다고 하지 않듯이 은행도 자산운용업은 건드리지 말라”고 지적했다. 은행ㆍ증권ㆍ보험이 각각의 영역을 지키는 ‘전업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황 회장의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내놨다. 황 회장의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대해 하 회장은 “은행은 축구장에서 축구를, 증권은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라는 게 전업주의”라며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니라 운동장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증권사가 기업 지급결제를 허용해달라는 주장을 두고 “농구를 해야 하는 팀이 ‘농구장에서 축구도 하겠다. 우리는 손을 잘 쓰니까축구하면서 손 발을 다 쓰겠다’고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하 회장은 전업주의가 아닌 ‘겸업주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논란을 없애려면 종합운동장을 만드는 겸업주의로 가야 한다. 그래야 범위의 경제, 규모의 경제를 통해 국내 금융권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 회장이 은행의 비효율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통계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2015년 기준 수익비용비율(총이익에서 판관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따졌을 때 은행은 57%, 증권은 66%로 증권업계의 비용효율성이 오히려 더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3분기 기준 자본수익률도 은행은 6.3%, 증권은 5.2%로 수익성 면에서도 은행이 증권보다 오히려 앞섰다. 하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은행ㆍ증권ㆍ보험 공히 마찬가지”라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겸업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회장이 비판한 신탁업법 제정과 관련해 하 회장은 역공으로 대응했다. 과거에 은행권이 취급했지만 지금은 금지된 ‘불특정금전신탁’의 부활을 함께 논의하자는 카드를 꺼냈다. 하 회장은 “초대형 투자은행(IB)에 종합투자계좌(IMA)를 허용한 마당에 불특정금전신탁을 배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불특정금전신탁 부활이) 아니면 대형 은행도 (초대형 IB처럼) IMA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2월 6일 간담회)

이슈

하영구 은행연합회장(2월 20일 간담회)

전업주의가 기본. 증권업계가 예금 받겠다고 하지 않듯이 은행도 자산운용업은 건드리지 마라

전업주의VS 겸업주의

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로 전환 필요. 겸업을 통해 규모의 경제 이뤄야

은행에 비해 금융투자업계가 불합리한 대접 받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

운동장론

은행은 축구장에서 축구, 증권은 농구장에서 농구하라는 게 전업주의.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니라 운동장이 다르다

국내 은행의 인당 영업이익 세계 최저이고 수익비용비율 너무 높아. 은행은 비용 효율화부터 해야

은행산업의 비효율성

수익성 낮은 건 은행 증권 공통. 수익비용비율은 은행(57%)보다 증권(66%)이 더 높다

투자자 편의와 경쟁 촉진 위해 허용해야. 금융당국이 조정에 나서야 한다

증권사 기업 지급결제 허용

전 세계적으로 증권사가 지급결제망 가입한 나라가 없다. 기업 지급결제 허용은 은산분리원칙 훼손

은행이 수익성이 떨어지니까 신탁업을 통해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

신탁업법 제정

신탁업법 제정하면서 은행이 과거에 했던 불특정금전신탁의 부활까지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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