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금배지 던지고 인간시장에 다시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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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직도 인간시장.'

각종 언론사 및 시민단체가 선정한 15대, 16대 국회의원 의정활동 종합평가 1위,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 8년연속 1위, 정치 사이트 '폴컴'(www.polcom.co.kr) 선정 2003년 베스트 정치인 1위를 차지한 정치인 김홍신(57)이 지난해 12월 10일 국회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그리고 곧 <인간시장 2>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80년대 초 군사독재를 겨냥,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이 사회에도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 <인간시장>. 김홍신이 '도둑'들을 두들겼던 비장의 무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때마침 오는 3월 SBS가 드라마 <2004 인간시장>을 방영한다. 깨끗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그가 금배지를 던지고 '야인'으로 펜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난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은 여전히 바빴다. 의원직을 떠난 후 조금 여유롭게 지내리라 생각했다. 최근 8년 동안 6차례나 '의정 활동 평가 1위'를 고수해 온 인물답게 지인의 주소 정리, 편지쓰기, 원고 정리 등 뒷정리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 주소만 수첩 하나로 만드는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국회의원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일일이 전화로 할 수 없어 편지를 써야 하고요. 직접 손으로 쓰기를 좋아합니다. 국회의원 하면서 간간이 청탁 받아 쓴 원고가 200자 원고지로 약 900여 매가 되네요. 글에 대한 욕구가 계속 있어 틈틈이 써 놓은 시도 정리 중이고요. 아마도 저의 첫 시집이 되지 않을까요."

전형적인 일벌레 스타일이다. 작은 키, 하지만 반짝거리며 살아있는 눈빛. 맨 주먹으로 사회 밑바닥과 사각지대를 훑고 다니던 장총찬은 그를 닮았다. 이번에는 정계를 향해 직격탄을 장전하고 있는 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이유는. 정계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

▲당(한나라당)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았다.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합당했던 15대 때 사퇴를 처음 고려했다. 지난해 여름에도 고심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 9일 사퇴하려 했으나 그날 저녁 국회 상임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문제가 있어 선언은 9일하고 사퇴는 다음날 했다. 마지막까지 할 일은 다해야만 했다. 다가오는 총선에 나갈지 안 나갈지는 아직 정한 바 없다.

-장총찬이 돌아온다. 왜 다시 '인간시장'인가.

▲장총찬이 필요한 시대는 불행하다. 지금은 계엄 시대보다 더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나빠졌다. 그땐 자동차에 현금 100억 원씩 실어 주고받진 않았다. '<인간시장>이 팔리지 않는 세상이 빨리 와야 한다'고 작가 후기에 밝힌 적도 있다. 세상이 나아졌다면 이 작품을 다시 쓸 필요도 없다. 다부지게 마음만 먹으면 정계로 복귀한다 하더라도 의정 활동과 <인간시장 2> 집필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다 내가 아는 이야기들이다.

-<인간시장 2>의 장총찬은 어떻게 바뀌나.

▲<인간시장>은 군사독재 시절에 사전 검열을 받으며 <주간한국>에 연재(81~86년)했다. '검열필'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힐 때마다 참담한 마음이었다. 원래 주인공 이름은 '권총찬'이었는데 군부를 비웃는 듯한 이름이 통과될 리 없었다. TV에 방영된 한 서부 활극에서 존 웨인이 권총 대신 장총으로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을 보고 '장총찬'으로 바꾸었다. 전편에서 22살이던 장총찬은 <인간시장 2>에서 30대가 된다. 시대 배경은 15대 국회가 시작되는 95~96년 정도로 잡고 있다. 시민운동을 하다 어렵게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권의 부정과 비리를 종횡무진 파헤친다. 필요한 부분에선 소송을 각오하더라도 실명을 쓰겠다.

-<인간시장> 연재 시절 어떤 고초를 겪었나.

▲<인간시장>의 내용 때문에 한 달 동안 당국에 끌려 다닌 적이 있다. 악뿐이 없었다. 권총 차고 맞장 떠보겠다는 일념이었다. 당시 나를 조사했던 사람이 지금 한나라당에 있다. 그땐 너무나 그를 미워했다. 93년 무렵 그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죽으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그가 산다면 화해하겠다고 다짐하고 그 양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다. 후에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이었다.

80년 구성된 국보위에 참가한 이화여대 여 교수가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도 '당신이 밉다'고 말했다. 하루는 조사를 하는 사람이 서랍에서 '국보위' 메모지를 꺼냈는데 굵은 만년필로 쓴 여자 글씨가 가득했다. 잘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보고 이 세상엔 고마운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다 용서했다. 묵묵히 나를 내조해 온 아내가 지금 아프다. 온갖 협박을 당하며 심장이 약한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도 참을성을 강요한 게 세월이 지나 보니 미안하고 가슴 아플 뿐이다.

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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