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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설날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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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어느 날 반전의 기회가 다가왔다.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 중 뛰어난 그림으로 환경미화를 다시 한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림을 그려냈다. 제목 '설날 풍경'. 얼음 밭 위에서 팽이를 돌리고, 썰매를 타고, 방패연을 날리는 아이들 그림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직접 만들어 놀던 기억을 되살려 멋지게 그려냈다. 결과는 좋았다. 6개의 그림 중 하나로 뽑혔고, 이후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확 변했다. 선생님의 뺨 세례도 그쳤다. 드디어 그곳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선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후 선생님은 마지막 학기의 유종의 미를 위해 건의 사항을 적어내게 했다. 나는 그동안 쌓여 있던 불만을 빼곡히 적어냈다. 쪽지를 수북이 쌓아 놓고 한 장씩 읽던 선생님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우하하. 아주 웃기네 이거. 이런 멍청한 놈이 있나. 얘들아, 들어봐. "차별대우를 없애주세요. 게시판에 붙은 그림들을 보면, 다 부잣집 애들이고 학급 간부들의 그림이에요. 정말 잘 그린 그림도 있는데, 가난하고 성적 나쁜 애들 그림은 다 빠졌어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건의라고 했느냐. 또라이 새끼! 라며 그 아이를 비웃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온 반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놈의 이상한 건의를 놀려 대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꽤 상했다. 그 건의를 한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누구보다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이기 위해 눈물이 날 정도로 고함치며 그 바보 같은 놈을 함께 비웃어 댔다. 서글픈 부화뇌동 전술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실은 그 이후로도 나의 정착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교실 벽의 달력이 12월로 넘어간 어느 날, 아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게시판에 붙은 내 그림과 똑같은 그림이 달력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나는 "어, 내가 살던 시골 그림이 왜 여기 있지"라며 함께 갸우뚱했다. 사실 나의 '설날 풍경'은 집에 있던 달력의 그림을 외워서 그대로 그린 것이었다. 그때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뱃속 가득하던 깻잎과 콩자반이 막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빨리 학교 밖으로 뛰쳐 나온 기억 밖에는….

요즘의 달력에는 그 무렵 단골이었던 세시풍경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요즘 달력에 팽이나 썰매나 방패연이 있다면 뭐랄까, 조선시대 풍속화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다시 설날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 역시 농경사회는 끝난 걸까.

◆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파리 8대학 실기석사 졸업.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감독

민규동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