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 뒤바뀐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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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12월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를 석달 남짓 앞두고 선거열기가 날로 가열되고 있다. 노태우민정당총재는 방미길에 나섰고, 전공화당총재 김종필씨도 곧 신당창당과 대통령출마를 공식 선언할게 분명해졌다.
예상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어느때보다 분주해진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민주당의 김영삼총재와 김대중고문간의 후보 단일화 문제다.
두 김씨는 이 문제에 대한 이견조정을 위해 14일 또 만났으나 이렇다할 합의는 보지 못한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두 김씨는 경선을 하지않고 후보를 단일화하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 돌아가는 양상은 단일화보다는 경선, 최악의 경우 분열사태까지 예견되는 쪽으로 가는듯한 인상이다.
민주주의 정당에서 대통령후보를 경선을 통해 뽑는다는 것은 오히려 정상이며 당연하다. 지난날 야당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치 못한 예가 없고 특히 72년 대통령선거때 두 김씨가 벌인 치열한 후보경쟁은 우리 정치사에서 드문 경선의 기록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이러한 원칙만을 갖고 따지기에는 아주 특이하다. 국민들이 왜 야당의대통령후보가 되도록이면 경선이라는 과정을 거치지않고 빠른 시일안에 단일화되기를 바라느냐는 까닭은 누구보다 두 김씨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도적으로 민주정치가 틀이 잡혀있다면 담판보다는 경선을 통해 후보를 가리는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민주화의 길목에 들어섰을 뿐이지 민주화가 된것은 아니다.
민주당내 두 진영이 무어라고 자기네 입장을 설명하건 겨우 민주화 도정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마치 대통령자리는 떼어논 당상인것 처럼 여기는 것은 볼썽사납기만 하다.
더우기 두 김씨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80년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7년전과 지금은 엄청나게 다르다. 무엇보다 선거가 치러질지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불투명한 요인들이 말끔히 가셔졌다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두김씨가 후보결정을 갖고 경선을 벌인다든지, 분열사태로까지 몰아간다면 한마디로 그것은 국민을 실망시키는 행위라는 지탄을 면할수가 없다.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일심동체가 되겠다고 그처럼 다짐했던 두 김씨가 끝내 이전투구의 양상을 벌일때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보라.
차츰 본격화되는 대통령선거 전초전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대권의 향방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민주화보다 누가
다음번 대통령이 되느냐는 쪽으로 정국을 변질시킬 위험성이다. 절대 다수 국민의 여망은 민주화에 있지 누가 정권을 잡느냐는 것은 부차적인 중요성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주 후보문제만 거론되다보면 자칫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의 경우 후보단일화는 민주화와 관련된 대국민 공약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상황변화라는 구실로 이 공약이 뒤틀리면 정치일정 자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시바삐 민주당후보문제가 매듭 지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야당의 건투를 바라는 충정에서다.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빨리 매듭 지어져야 국민들은 안도할 것이며 앞으로의 정국전개도 훨씬 투명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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