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奇人의 죽음 … 윤흥길씨 소설집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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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설가 이문구가 "혼자 웃으며 울며 읽느라고 담배 한갑을 다 태웠다"고 고백한 바 있는 중편소설 '장마', 저수지 감시원의 완장을 통해 권력의 폐해를 풍자한 장편소설 '완장' 등을 쓴 소설가 윤흥길(61.사진)씨가 소설집 '낙원?천사?'(민음사)를 출간했다. 1997년 발표한 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이후 6년 만인 소설집에는 93년 발표한 '쌀', 98년 발표한 '낙원?천사?', 2000년 발표한 '산불' 등 중편 세편을 모았다.

표제작 '낙원?천사?'는 한 지방대학 캠퍼스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천사'라고 불린 기인의 비참한 최후를 둘러싼 이야기다.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 연배로 추정되지만 얼굴 모습과 신체조건은 영락없는 청소년인 천사는 복잡한 학사행정과 악명 높은 과목의 학점 따는 법은 물론 캠퍼스 내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뉴스까지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신출귀몰한 존재다.

비극의 씨앗은 'IMF'였다. 겨울철 비용절감을 위해 학교 측이 난방을 중단하자 천사는 학교 집기를 태우며 버티다 끝내 얼어죽는다.

부모로부터 버려져 학교로 흘러들었지만 주변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캠퍼스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천사의 죽음 앞에, 천사가 민초도 학생회 소속도 아니었고 따라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총학생회의 주장은 설득력 없다. 학교 규율을 들먹이며 책임 없음을 내세우는 동아리연합회나 사무처장.학생처장 등 학교 측도 정작 소중한 것은 놓쳐버리는 껍데기뿐인 원칙주의, 합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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