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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와 신중상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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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무현="나도 읽어 봤는데 좀 문제 있는 대목도 있더군요."

▶김근태="정부 정책에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많습니다. 폐해가 우려됩니다."

▶노무현="당사자인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신자유주의 정책을 편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아침 식사를 했다. 차기 대선 예비주자인 김근태 장관이 열린우리당에 복귀하기 이틀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자리다. 위의 대화록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얘기 중 일부를 취지가 잘 드러나도록 재구성한 것이다.

이 식탁 대화는 2007년 대선의 승부가 어디서 갈릴지 암시하고 있다. 김근태 의원은 차기 대선 구도를 신자유주의 대 신중상주의의 대결로 짜려고 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은 민주노총 같은 좌파들한테는 신자유주의 우파로, 뉴라이트 같은 우파들한테는 세금은 올리고 재정은 거덜내는 포퓰리스트 좌파로 비난받고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는 신자유주의도, 포퓰리스트도 아닌 혁신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차기 대선의 승부처는 양극화와 신자유주의다. 승부처는 상대방이 먼저 치면 반대쪽에서 역량을 총동원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의 승부처는 맥아더 장군이 상륙작전을 감행한 인천이었다. 인천을 쳤기에 낙동강 전선에 집중됐던 북한군의 역량이 순식간에 균형을 잃으면서 무너졌다.

노무현과 김대중은 차례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를 승부처로 삼았다. 김영삼의 승부처는 '호남포위 지역구도(3당합당)'였고, 노태우는 '민주화진영 분열(김영삼.김대중의 후보단일화 실패)'이었다.

그렇지만 기득권.지역.민주화 이슈는 과거의 승부처일 뿐이다. 경쟁자들이 허실을 간파한 곳에서 또다시 전선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결국 2007년 대선의 승부처는 정책철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철학 중에서 신자유주의와 신중상주의의 대립각이 아주 예리해 보인다. 신자유주의는 한동안 지식인층에서 유행하던 전문 용어였다. 그랬던 게 유권자 대부분이 뼈저리게 아파하고 있는 양극화의 주범이란 혐의를 받게 되자 갑자기 유명해졌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을 쥐고 흔드는 세계 금융자본의 정책철학이다. 세계 금융자본은 무엇을 주장하는가. '시장이 선(善)이다. 시장에 국경은 없다. 국가는 좀 가만히 있어라. 세계 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라.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라….'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철학에 신중상주의가 허점을 파고들었다. 신중상주의는 무엇을 믿는가. '시장엔 결함이 있으며 이를 국가가 보완해야 한다. 국가는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대표적인 개입정책의 사례는 박정희식 경제개발이다.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위해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차기 주자 중 '빅3'는 인기와 개성과 실력이 뛰어나다. 고건.박근혜.이명박 얘기다. 반면 여권의 주자들은 빅3에 '인물'로 도전하기가 버겁다. 대신 정책으로 승부를 걸려 한다. 김근태가 신중상주의 정책을 벼리는 이유다. 정책의 승부는 유권자의 갈증과 허기를 얼마나 통렬하게 찌르느냐의 문제다. 신자유주의 영토에 신중상주의 상륙작전을 벌인다는 김근태의 구상이 성공하면 정책이 인물을 이기는 것이다. 정책이 옳으냐는 차치하고.

전영기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