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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LG와 ‘밀월’ 삼성과는 ‘밀당’…구글의 양면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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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SW·HW 주도권 놓고 불협화음

#LG전자는 오는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스마트폰 신제품 ‘G6’를 공개한다. 이번 신작이 여느해 것보다 더 주목 받는 이유는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져서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질문을 파악하고 음악 재생, 예약, 스케줄 조회, 메시지 전송 등을 수행하는 ‘스마트폰 속의 비서’다. 구글이 직접 설계한 스마트폰 ‘픽셀’에 이 기능을 장착한 것을 제외하면 외부 제조업체가 어시스턴트를 활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구글이 개발한 AI ‘어시스턴트’
외부 업체엔 처음으로 G6에 장착
삼성폰 OS는 뒤늦게 업그레이드
갤럭시S8에 독자적 AI 탑재 추진
삼성 측 계획에 구글 노골적 불만
구글 ‘픽셀폰’ 출시하며 견제구
자율주행 등 미래 산업 곳곳 갈등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7, S7엣지의 운영체제(OS)를 출시 10개월 만인 지난달 말에야 최신 버전 ‘누가’로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누가는 전작 ‘마시멜로’에 비해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인터넷 사이트를 지문인식 만으로 로그인할 수 있게 되고 화면 분할 기능 확대, 앱 실행 속도 향상 등 여러 기능이 장착됐다. 갤럭시S7 이용 고객들은 OS 업그레이드 만으로도 이같은 최신 기능을 누릴 수 있었지만 구글은 지난해 8월말 출시된 누가를 해가 바뀐 뒤에야 삼성전자가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SW) 강자 구글과 한국의 하드웨어(HW) 제조업체들 사이에 상반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구글은 LG전자와 ‘우호적 협업’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사례는 수두룩하다. LG전자는 이달 중 출시할 새 스마트워치 ‘LG워치 스포츠’와 ‘LG워치 스타일’에 구글의 최신 웨어러블 OS ‘안드로이드 웨어 2.0’을 탑재한다. 이 역시 세계 첫 적용이다. 삼성전자가 애를 먹은 최신 OS ‘누가’도 LG전자는 지난해 9월 출시한 대화면폰 V20에 이미 세계 최초로 탑재해 출시했다. 이 덕분에 V20에서는 애플리케이션 콘텐트를 통합 검색하는 ‘인앱스’(In Apps) 서비스도 가능해졌다. 앞서 구글은 넥서스 등 개발자들에게 표준이 되는 ‘레퍼런스 폰’을 LG전자와 협업해 출시하기도 했다.

LG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구글과 삼성 간에는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구글은 최근 삼성전자가 차기 스마트폰 갤럭시S8에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빅스비’를 탑재하려는데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두 회사가 서로 경쟁되는 서비스를 출시할 수 없다는 비경쟁계약(Non-compete Pact)을 2014년에 맺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성전자의 AI 기능 개발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AI기능 탑재와 관련해 OS 제공업체인 구글과 협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인공지능 기술 자체가 특정사의 전유물은 아니다”고 맞서고 있다.

정보기술(IT)소송전문가인 법무법인 테크앤로의 구태언 변호사는 “두 회사의 갈등은 한마디로 ‘SW의 구글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삼성과, ‘HW의 삼성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구글이 부딪히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두 회사의 갈등은 삼성전자가 SW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심화됐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OS 자체 개발에 10년 가까이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자체 OS ‘타이젠’을 웨어러블 기기 ‘갤럭시 기어’와 중저가 스마트폰 시리즈에 장착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모든 가전기기가 데이터를 주고 받는 사물인터넷(IoT) 시대에는 삼성전자가 타이젠을 앞세워 ‘OS 독립선언’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가 2014년 미국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OS 개발 중단을 노골적으로 요청한 것도 이에 대한 견제로 분석된다. 구글의 대응은 불만 표시에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구글은 자체 개발한 프리미엄폰 ‘픽셀폰’을 출시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AI 장착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한편 삼성전자에는 강한 견제구를 날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제조 파워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속내를 보였다는 것이다.

구글과 삼성의 갈등 관계는 당분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미래 사업 분야 곳곳에서 부딪히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AI 기술기업 비브랩스를 인수한 지 한 달 여 만에 전장기술 관련 최고 기술 업체로 평가받는 하만을 전격 인수했다. 미래 시장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자율주행은 인공지능 같은 소프트웨어에 전장기술과 통신 등 관련 기술이 모두 결합해야하는 ‘미래 기술의 결정판’으로 불린다. 삼성전자와 구글 모두 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사내 역량을 모으고 있다. IT전문가인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구글은 북미 스마트폰 시장 3위를 차지하고 있어 소비자 접점이 넓은 LG전자와 최신 SW 시범 적용 같은 협업을 확대할 것”이라며 “삼성과는 협업하되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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