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한국 경제가 2년 연속 2%대 저성장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2.7%
최순실 국정 농단, AI 악재 겹쳐
소비·건설투자 증가율 내리막길
반도체 등 설비투자로 그나마 지탱
미 보호무역 강화로 불확실성 커져
25일 한국은행이 2016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7%(전년 대비, 속보치)라고 발표하자 시장은 오히려 차분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수치여서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5년(2.6%)에 이어 2년 연속 2%대에 그쳤다. 올해 전망도 어둡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2.5%다. 이 전망이 맞아떨어지면 3년 연속 2%대 성장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2%대로 추락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2015년 잠재성장률이 3.0∼3.2%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최근 수년간 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잠재성장률 수준이 바뀌었을 수 있어 다시 추정해 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015년보다 소폭 증가했지만 경기가 회복 흐름에 돌아섰다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호황에 따른 건설투자 증가, 저유가 효과, 정부의 소비 활성화 대책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적표에서 이미 조짐이 보였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0.6%였던 실질 GDP 증가율(전 분기 대비)은 4분기 0.4%로 주저앉았다. 2014년 4분기(0.7%)부터 5분기 연속 0%대로 그마저도 하락세다.
닫힌 지갑, 꺾인 부동산 경기가 저성장의 주된 이유다. 지난해 3분기 0.5%였던 민간소비 증가율(전기 대비)은 4분기 0.2%로 추락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청탁금지법 시행 등 악재에 소비자는 지갑을 닫았다. 건설투자 증가율도 지난해 3분기 3.5%에서 4분기 -1.7%로 내려앉았다. 시장 금리 상승에 대내외 경기 불안까지 겹치면서 주택 경기가 하락 흐름을 탔다.
추락하는 경기를 지탱하는 건 설비투자 정도다. 지난해 3분기 0.2%에 그쳤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4분기 6.3%로 뛰었다. 정규일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이 잘 되면서 제조 장비 같은 선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종별로도 제조업만 웃었다. 지난해 3분기 -0.9%였던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4분기 1.8%로 반등했다. 반면 건설업 생산은 3분기 3.7%에서 4분기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비스업(0.9→0%), 전기·가스·수도사업(5.9→-4.3%), 농림어업(-1.6→-2.8%) 할 것 없이 ‘빨간불’이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이 받아든 경제 성적표는 예고편일 뿐이다. 본편은 올해부터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정세 불안과 미국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수출 둔화, 투자 부진, 소비 침체가 앞으로도 한국 경제 성장을 제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규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트럼프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클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대 중국 보호무역조치가 현실화한다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