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베컴의 경제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지난달 영국 축구팬들은 자존심이 상했을지 모른다. 영국 축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데이비드 베컴이 지네딘 지단(프랑스)이나 루이스 피구(포르투갈)보다 낮은 이적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가 베컴을 데려가기 위해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낸 이적료는 4천1백30만달러(약 4백96억원). 레알 마드리드는 지단의 이적료로 6천6백20만달러, 피구의 경우 5천6백10만달러를 지불했다.

베컴은 지난해 연봉과 보너스.광고 수입 등을 합해 2백5억원을 벌어들여 지단(1백93억원)을 누르고 축구 선수 소득 1위를 차지했다. 베컴의 인기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할 만하다. 홍콩의 한 대학에선 베컴이 수퍼스타가 된 과정을 조명하는 '축구의 세계'란 강좌를 만들 정도다.

그러면 베컴이 인기만 높을 뿐 지단이나 피구보다 실력이 뒤져 이적료가 낮았을까. 실력이 뒤진다고 하면 가만있지 않을 호나우두(브라질)의 이적료가 4천5백만달러였던 점을 보면 실력 때문만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축구도 손익을 따지는 비즈니스라는 점을 고려하면 베컴의 이적료가 결코 싼 게 아니라는 것이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이다. 베컴이 맨체스터와 맺은 계약기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흐를수록 구단이 받을 베컴의 이적료가 줄어들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근 중국.일본.홍콩.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투어에서 '베컴 열풍'을 만끽하고 있다. 매 경기 입장권 매진은 물론 일본에선 3천엔의 입장료를 받은 공개 연습에도 4만5천여명의 팬이 몰려들었다.

스포츠 경영학의 석학인 첼라두라이는 참여 스포츠와 관람 스포츠의 경영이 달라야 한다며 관람 스포츠에서는 소비자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0년부터 피구.지단.호나우두.베컴 등 매년 빅스타 한명씩을 영입해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레알 마드리드는 이 지침을 충실히 따르면서 지난해 매출 3천6백억원으로 맨체스터를 제치고 세계 최대 축구 클럽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막판까지 우승을 다툰 레알 소시에다드에 스카우트된 이천수를 스페인 언론은 '코리안 베컴'이라고 불렀다. 이천수가 베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기다려진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