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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레이건 시대’ 재건할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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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루시르 샤르마 글로벌 경제분석가

루시르 샤르마
글로벌 경제분석가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미국 경제가 과열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로널드 레이건 이래 가장 기업 친화적인 대통령이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인 듯하다.

노동인구 감소로 좋은 시절 끝나
잠재성장률 넘는 성장은 불가능
감세와 규제완화도 약발 안 먹혀
고도성장 포기하고 내실 다질 때

트럼프 경제팀도 “감세와 규제완화로 연평균 성장률을 3.5%까지 끌어올릴 것”이라 장담한다. 레이건 정부 시절과 같은 성장률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수치에 회의적인 시각을 ‘패배주의’라 일축한다. 1980년대식 경제부흥이 재현되지 못하게 막는 경제법칙은 없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법칙은 있다. 레이건 이후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힘이 세계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국가라도 잠재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은 성장을 하기 어렵다.

잠재성장률은 인구와 생산성이란 2개의 요소로 결정된다. 경제는 노동인구를 늘리거나 그들의 생산성을 높여야만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레이건 시절엔 인구와 생산성이 연간 1.7%씩 성장했다. 그 때문에 잠재성장률도 3.5%에 달했다. 덕분에 레이건 정부는 경제엔진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과열시키지 않아도 됐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아마도 ‘레이건 2.0’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인다. 그러나 레이건 시대 이후 미국이 얼마나 변했는지 간과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인구와 생산성 증가율은 0.75% 선으로 추락했다. 잠재성장률도 1.5%에 그쳤다. 레이건 시대의 절반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은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만 초래한다.

지난 1000년간 인구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던 경제는 없다. 인구성장률이 0.5%를 넘지 못했던 19세기 이전엔 글로벌 경제성장률이 1%를 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야 인구성장률이 1%에 도달하면서 경제성장률이 2%대에 올라섰다. 전후 베이비붐 현상으로 인구성장률이 2%에 이르면서 경제성장률도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4% 선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며 글로벌 인구성장률이 1%대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선 팽창 대신 방어적 경제정책이 최선이다. 미국도 인구증가세가 줄어 지난해엔 1930년대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따라서 어떤 대통령도 향후 10년 동안 매년 3.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없다.

인구증가세가 둔화되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수가 감소한다. 은퇴 연령을 높이거나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여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럴 계획이 없다. 대신 구직을 단념한 미국의 근로자를 다시 일터로 불러들이는 방식을 택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노동인구가 감소한 이유는 사람들이 구직을 단념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의 노동인구가 55세를 넘겼기 때문이다.

미국이 80년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인구보다 생산성에 집중한다. 레이건식의 감세와 규제완화로 투자를 늘리고 근로자들의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측정하거나 예측하는 건 인구보다 훨씬 어렵다.

트럼프 경제팀이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을 레이건 시대와 같은 1.7% 선으로 올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도 잠재적 경제성장률은 2.5%에 그칠 것이다. ‘다시 위대해지는’ 수준엔 한참 미치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은 지나간 시대에 대한 덧없는 향수다. 전후 세계는 베이비붐에 따른 고도성장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구성장 시대가 끝났다.

이 때문에 이제는 ‘강력한 성장’의 기준선을 1%포인트 이상 하향 조정해야 한다. 평균 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는 미국 같은 선진국은 경제성장률이 1.5%만 넘으면 괜찮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트럼프처럼 미국의 성장률을 중국과 비교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 소득이 낮은 국가일수록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구성장세 둔화는 중국 같은 저소득 국가에도 부담을 가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시 경제성장의 기준선을 4% 선으로 하향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목표를 지나치게 높이 잡으면 경제는 위험해진다. 미국 경제는 지난 수년간 2% 선의 실질 성장률을 기록했다. 80년대와 비교하면 실망스럽지만 성장 잠재력이 약해진 현실에선 끔찍한 수준이 아니다. 국가가 잠재력보다 빠른 경제성장을 밀어붙이면, 부채와 적자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인플레가 가속화되면 중앙은행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경기가 침체된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현 상황에서 이런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대중이 경제성장이 둔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고도성장’이란 환상을 공약으로 내건 포퓰리즘 정치인이 여러 나라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성장 둔화라는 새로운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루시르 샤르마 글로벌 경제분석가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4일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