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말 잘하려면 목소리를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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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 대선이 좋은 예다. 세 차례에 걸친 토론회에서 토론에 능한 앨 고어가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상대적으로 무식하다는 부시가 선전해 득을 보았다. 고어는 ①정책은 잘 펼쳤지만 ②부시가 말할 때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눈동자를 돌려 비웃는 모습을 보였고 ③연거푸 한숨을 내쉬거나 부시의 말을 부인하는 듯 필요없는 군소리를 여러 차례 집어 넣었다. ①은 말, ②는 몸짓언어, ③은 의사언어다. 고어는 의사언어에서 인간적 매력이 부족했다.

목소리는 어조, 음색, 발성소리 등으로 나뉜다. 첫째, 어조는 화자의 성별 연령 건강과 감정상태, 청자와의 공간적.사회적 위치관계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의사가 목소리만 듣고서도 환자를 진찰(聞診)할 수 있는 것은 어조 때문이다. 둘째, 음색은 말의 속도와 템포. 높낮이, 크기, 길이, 머뭇거림과 끊어읽기, 억양, 조음(調音)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음색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학습되고 습관적으로 체계화된 것으로 화자의 문화적 존재를 나타낸다. 경력이 많은 택시운전사는 승객이 문 닫고 자리에 앉으며 목적지를 말하면 그 소리만 듣고서도 대충 승객의 직업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음색 때문이다. 셋째, 발성 소리는 일시적으로 내는 트림.하품.웃음.울음.기침.환호.야유.탄성 등이다. 발성소리는 생리적으로 나는 소리와 무의식적 의식적 의사표현으로 내는 소리로 나뉜다.

목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지식이나 인격, 육체적 영적 상태가 바뀌면 목소리도 바뀐다. 반대로 목소리가 바뀌면 삶도 바뀐다. 목소리를 위한 연습으로 ①허리.가슴.어깨.목 등의 바른 자세 ②종이나 촛불을 켜놓고 입김을 세게 많이 내뿜거나 숨을 가늘게 오래 내쉬는 호흡 훈련 ③외다리서기와 윗몸일으키기 등 복근훈련 ④연필을 물고 입술과 혀를 최대한 움직이면서 책을 읽는 조음연습 ⑤마음의 여유를 위한 기도.명상.산책 등이 있다. 협상이나 토론을 잘하는 사람은 독특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좋은 목소리는 목구멍의 ①아래(후두부)가 아니라 ②중간(입주위)과 ③윗부분 (코주위) 사이, 즉 마스크가 울려서 나는 소리다. 흉골 (좌우 늑골이 맞닿는 뼈) 바로 아래 움푹 파인 곳을 꾹꾹 누르면서 힘차게 소리내보자. "음-" 이 소리가 바로 ②에서 나는 소리다. 이번에는 힘차고 길게. "음-흠--" 이때 "음-"은 ②에서, "흠--"은 ②보다 좀 더 높이 ③에서 나는 소리다. 방송촬영이 있는 날 집을 나서기 전 나는 현관에서 힘차고 길게 소리 낸다. "음-흠--" 긴장될 때도 몇 차례가 하고 나면 마음이 안정된다.

자.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하루에 열 번씩 연습해보자. 자신의 목소리를 밀실보다는 광장에 적합하도록 훈련하자. 광장에서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되면 광장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목소리를 깨워라. 그래야 말을 잘할 수 있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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