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도 경위 자살… 유서 남겼지만 자살동기는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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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계획 몰랐나=검찰이 강 경위에게 소환을 통보한 때는 19일. "윤상림씨와의 돈거래 문제로 확인할 게 있으니 20일 중으로 검찰청에 나와 달라"는 요구에 강 경위는 "나가겠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 경위는 20일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형 등에게 전화해 "죽고 싶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부인은 이날 오후 2시까지 강 경위와 연락이 닿지 않자 경기도 일산소방서에 신고했다. 강 경위는 이튿날 오전 11시쯤 강원도 원주시의 한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관 10여 명은 20일 강 경위의 고향 원주를 찾아 동네 주민들에게 강 경위의 행적을 수소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자살 동기 너무 단순"=검찰은 윤씨의 차명계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 경위가 윤씨와 돈거래한 내역을 확보했다. 강 경위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20일 강 경위와 마지막 통화를 했고, (윤씨와 어떤 돈거래를 했느냐고) 물어보니 가족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박모 사장에게 주식투자 명목으로 2000만원을 부쳤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강 경위는 유서에서 "돈 좀 벌어서 살겠다고 박 사장님께 송금시킨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주장했다. 자신이 박 사장에게 보낸 돈은 주식투자를 위한 것이었고 부인 몰래 관리한 비자금이었다는 것이다.

강 경위와 최 차장, 최 차장의 친구 박 사장, 윤씨 등은 복잡한 돈 관계로 얽혀 있다. 지난해 7월 윤씨는 최 차장에게 급전이 필요하다며 2000만원을 요청했다. 이에 최 차장은 자신의 친구인 박 사장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박 사장은 윤씨의 차명계좌로 송금하면서 전표에 최 차장의 이름을 함께 적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강 경위도 지난해 3월 박 사장에게 2000만원을 송금했다. 강 경위는 유서에서 최 차장이 준 용돈과 월급을 모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강 경위의 돈 거래와 최 차장의 돈 거래가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보고 강 경위를 소환 조사하려 했다.

강 경위는 1999년 최 차장이 경찰청 조사과장(사직동 팀장)이었던 시절 지근 거리에서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차장이 '옷 로비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함께 검찰에 불려가 수차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 조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워낙 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과) 교수는 "10, 12세짜리 두 딸과 아내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보기에는 동기가 너무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 "검찰 수사에 대한 분개 엿보여"=강 경위는 최 차장의 수행비서로서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는 위치였다. 수행비서는 상관의 집안일까지 처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때문에 강 경위가 최 차장의 개인적 돈 관계를 자세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강 경위는 유서에서 "박 사장님한테 아니면 차장님한테 전화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 차장님한테 빌려드린 돈도 있다"며 최 차장과의 돈거래가 있음을 시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차장에 누가 된다는 생각에 자살을 선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경위는 유서에서 "윤상림을 잘 몰라요. 전화는 가끔 오긴 하더구먼. 통화 안 되면 하루 2, 3통씩 올 때도 있다"며 윤씨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또 "검새(검사를 비하하는 뉘앙스의 단어) 없는 세상으로 가자"며 검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앙대 현명호(심리학) 교수는 "강 경위가 유서에서 강조한 것은 검찰 수사와 검찰에 대한 분개 같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동료에게 가족 보호 부탁 차원"=강 경위가 유서를 경찰청 사무실에 놔둔 이유도 의문이다. 곽금주 교수는 "자살 장소가 아닌 직장에 유서를 남겼다는 건 직장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려는 동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가족을 유난히 강조한 것도 동료에게 가족에 대한 보호를 부탁한 차원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병주.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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