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몰카 테이프'언론사 판단 존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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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검찰이 양길승 전 대통령 부속실장의 향응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의 확보를 위해 SBS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겠다는 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다.

언론도 이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중대한 범죄행위와 관련해 확보된 물증이 수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어디까지나 자율적 판단에 따라 협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검찰의 영장신청과 법원의 발부가 꼭 필요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검찰이 단순한 사안의 물증확보를 위해 언론자유를 침해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이런 우려까지 야기하면서 언론기관을 압수수색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미 방영된 필름에는 梁씨의 청주 도착부터 서울로 떠나기까지의 동선을 포함해 신원이 확인된 증인들과 함께 한 여성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장면 등이 자세히 나온다. 따라서 원본 비디오가 아니라도 검찰은 얼마든지 그 배후를 수사할 물증을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도 검찰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압수수색부터 하려는 것은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무시했거나 그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기관은 취재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언론이 이번 처럼 얼굴없는 고발자라도 최대한 보호해야만 하는 이유는 너무 자명하다. 그것이 사회적 비리나 권력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하야를 끌어낸 결정적 요인도 취재원을 끝까지 보호한 워싱턴 포스트의 직업적 윤리의식의 실천과, 이를 뒷받침했던 법원의 판례였다.

언론자유의 중요성이 세계적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보호되지 않을 때 권력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검찰이 영장집행이라는 강제적인 압수수색으로 해결할 일이 결코 아니다. 언론의 취재원 보호와 법집행이라는 양단 사이에서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그것은 언론사의 자율적 판단이 최대한 존중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