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덴마크 올보르까지 넘어온 '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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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13일 정유라씨가 구금된 덴마크 올보르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사진=이현 기자)

현지시간 13일 정유라씨가 구금된 덴마크 올보르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사진=이현 기자)

현지시간 13일 오후 4시, 덴마크 북부 올보르 구치소 앞에 촛불을 든 교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겨울철 덴마크에서는 오후 4시면 해가 진다. 처음 집회를 제안한 임지애(35·스웨덴 룬드 거주)씨는 "사람들이 여기는 해가 빨리 져서 촛불집회 하기 참 좋은 환경이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현지시간 13일, 14일 이틀간 덴마크 현지에서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딸 정유라(21)씨 송환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임씨가 처음 페이스북을 통해 제안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북유럽 일대 교민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다. 올보르 교민을 통해 경찰에 집회 신고도 했다.

덴마크, 스웨덴 등에 거주하는 교민과 현지인 20여명은 올보르 구치소 앞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집회에 참가한 여지형씨가 찍은 사진.(사진제공=여지형)

덴마크, 스웨덴 등에 거주하는 교민과 현지인 20여명은 올보르 구치소 앞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집회에 참가한 여지형씨가 찍은 사진.(사진제공=여지형)

집회 참가 인원은 스무 명 남짓. 스웨덴 남부,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 등 북유럽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깊다.

스웨덴 말뫼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온 송민하(29)씨는 "광화문의 촛불을 올보르까지 잇고 싶었다"며 "경기도 포천에 사시는 부모님께서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11번 나가셨다. 거기에 비하면 이건 힘든 것도 아니"라고 했다.

엄마를 따라 유모차를 타고 나온 두 살배기 꼬마도 고사리같은 손으로 촛불을 들었다. (사진=이현 기자)

엄마를 따라 유모차를 타고 나온 두 살배기 꼬마도 고사리같은 손으로 촛불을 들었다. (사진=이현 기자)

엄마를 따라 유모차를 타고 온 아이, 한국인 배우자를 따라 나온 덴마크인 남편 등도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 남자친구를 따라 집회에 나온 크리스티나 윌킨스(24)는 "어쨌든 이건 한국이 해결할 문제고 덴마크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가능한 빨리 정유라씨를 송환하는게 낫다"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애국가를 함께 부르면서 시작해 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인 임혜리(24)씨는 구치소를 향해 서서 "안녕, 유라야? 내가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말 놓을게"라며 "너는 나를 모르는데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니?"라고 크게 외쳤다.

올보르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은  정유라를 송환하라(Extradite Jung Yoora)`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사진제공=여지형)

올보르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은 "정유라를 송환하라(Extradite Jung Yoora)`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사진제공=여지형)

임씨는 "정씨와 또래인 나는 하나라도 더 해보려고 열심히 사는데,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들은 올보르 촛불집회를 통해 국정농단 사태에 개입된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있다. 숨을 곳은 없다. 당신이 어디에 숨든지 곳곳에서 국민들이 지켜볼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민주주의가 발달되고 부정부패 지수가 낮은 북유럽에 사는 참가자들은 국정농단 사태가 부끄럽다면서도,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성숙한 집회문화를 세계에 보여준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임지애씨는 "북유럽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없는 단계다. 민주주의를 위해 겪어야하는 과정,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덴마크 올보르=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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